이영철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신작 '피지컬 싱킹+AI' 안무
"머리 몸통서 떨어진 안무 제안도…보조 역할은 충분히 수행"
인공지능으로 창작한 발레…"포즈 입력하면 연계 동작 찾아주죠"
예술계에 인공지능(AI)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발레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해 안무를 창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1일부터 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KNB 무브먼트 시리즈 8' 무대에 오르는 신작 중 하나인 '피지컬 싱킹+AI(Physical Thinking + AI)'가 바로 그 작품이다.

무용계에서는 2020년 신창호 안무가가 국립현대무용단과 AI를 활용해 만든 작품 '비욘드 블랙'을 선보인 바 있지만, 발레 작품 가운데 AI를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전장을 내민 이는 이영철(45)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다.

그는 구글아트앤컬처가 개발한 인공지능 안무 툴 '리빙 아카이브'를 이용해 '피지컬 싱킹+AI'를 만들었다.

프로그램 북도 챗GPT가 작성한 것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실었다.

지난달 29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 안무가는 "챗GPT가 나오고 AI가 화두가 되면서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AI로 언어 생성이나 음악 작곡,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들이 있는데 무용 쪽에도 뭐가 없을지 찾아보다 '리빙 아카이브'를 알게 됐다"고 AI를 활용한 안무 창작을 시도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처음에는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사용하기 어려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굉장히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워서 놀랐다"며 "이번 작품의 절반 정도를 AI가 기여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시스턴트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으로 창작한 발레…"포즈 입력하면 연계 동작 찾아주죠"
이 안무가가 사용한 '리빙 아카이브'는 영국의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가 구글 엔지니어들과 협업해 만든 AI 툴이다.

맥그리거가 평생 안무한 작품들을 학습한 AI가 안무의 동작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날, 이 안무가는 직접 '리빙 아카이브'를 사용하는 법을 보여줬다.

그가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회색 배경에 동그란 머리에 팔다리가 달린 '졸라맨'을 닮은 캐릭터가 수십 개 흩뿌려져 있었다.

이 캐릭터들은 화면을 이동하고, 축소할 때마다 수백개, 수천개로 무한히 늘어났는데, 하나 같이 제각각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로 이 안무가가 취한 몸동작을 촬영하자 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AI가 찾아줬고, 다른 동작의 캐릭터들을 몇 개 골라 연결하자 안무 하나가 뚝딱 완성됐다.

물론 이렇게 완성된 안무를 다듬고 변형하는 것은 안무가의 영역이다.

이 안무가는 "프로그램이 아주 심플하다.

포즈 하나를 취해 캡처하면 그와 비슷한 동작을 찾아주고, 확장할 수 있는 제안을 여러 개 펼쳐준다.

그렇게 만든 안무를 다시 손보면 된다"며 "무용수들에게 (AI로 만든 안무를) 전달하면, 그걸 해석한 동작들이 다 다르게 나온다.

그러면 여기서 괜찮은 소스들을 찾아내고 제 색깔을 입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무가마다 자신의 색깔을 무용수들에게 입히는 스타일도 있고, 무용수들이 가진 색깔을 뽑아내는 경우도 있다.

저는 후자 쪽이라 AI를 활용하는 데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며 "저는 안무를 할 때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맞아떨어지도록 구조적으로 계산을 하는데 AI는 1명의 안무를 각각 만들고 그걸 합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우연성이 발현된다.

그런 과정도 재밌었다"고 말했다.

"만약 글을 쓴다고 하면, 모든 문장이 다 잘 써지는 게 아니잖아요.

겨우 한 문장을 뽑아냈는데, 그 뒤로 더 이상 진전이 안 될 때. 그때 이 AI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나아가는 거죠."
인공지능으로 창작한 발레…"포즈 입력하면 연계 동작 찾아주죠"
그렇게 완성된 '피지컬 싱킹+AI'의 공연 시간은 13∼14분가량이다.

관객이 봤을 때는 AI를 활용해 창작한 안무라고 해서 다른 작품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 이 안무가의 설명이다.

이 안무가는 이번 도전은 무사히 마쳤지만, AI 안무 창작의 한계도 느꼈다고 했다.

AI가 추천한 동작을 보면 사람의 몸으로 구현할 수 없거나, 연결 동작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그는 "머리가 몸에 안 붙어있고, 땅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AI가 제시한 동작 중에는 따라 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며 "또 캐릭터가 2차원이다 보니 팔이 엉켜있으면 이게 오른손과 왼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AI가 웨인 맥그리거의 안무만 학습한 상태기 때문에 스타일의 한계가 있다.

이 안무가는 직선적인 선을 쓰는 안무가인데, AI가 곡선적인 안무를 비롯해 다양한 것들을 더 배운다면 더 다양한 동작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후에는 1명의 안무가 아닌 듀엣의 안무를 할 수 있게 되거나, 음악의 분위기에 맞는 동작을 추천해주는 기능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능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보조적인 수단으로는 활용 가치는 점점 커지겠죠. 예술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나온다고 하잖아요.

나중에는 1%의 영감에 10∼20% 노력만 들이면 AI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인공지능으로 창작한 발레…"포즈 입력하면 연계 동작 찾아주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