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일단 살려야 vs 양육포기 부추겨…'보호출산제' 오랜 논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입양특례법·베이비박스 등과 함께 찬반 논란 계속돼
모자 생명권·아이 정체성·부모 알 권리 등 가치 충돌 지난 8년 사이에만 2천 명이 넘는 출생 미신고 영유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영아 유기나 '유령 아동'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의 도입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는데 입양특례법, 베이비박스 등과 맞물려 찬반이 갈려온 보호출산제의 경우 입법 과정에서 첨예한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
◇ 병원 밖 출산·유기 막아야 vs 양육 포기 돕기보단 지원이 우선
2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은 경제적·사회적 곤경에 처한 임신부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후 지자체에 아이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2020년 12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듬해 5월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기임산부 및 아동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에도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과 익명 인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도 그 이전부터 보호출산제 도입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을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막을 일종의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를 함께 들고나온 것이다.
일부 부작용 우려나 의료계의 반대를 제외하곤 출생통보제에선 대체로 이견이 없는 데 반해 익명출산제, 비밀출산제로도 불리는 보호출산제는 찬반 논란이 적지 않다.
일단 찬성하는 쪽은 임신부가 신원 노출이나 양육은 원하지 않지만 출산을 원할 경우 안전한 환경에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병원 밖에서 위험천만한 출산을 한다면 임신부와 아이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고, 출산 후에도 영아 유기나 살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출산제가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아이를 뿌리 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만든다는 반대 목소리도 크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를 위한 제도라고 하면서 일단 숨기려고 하는 것부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양육 포기나 입양을 돕기보다 출산과 양육을 택한 미혼모를 위한 지원이 우선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엄마의 정보를 찾고 싶을 때 찾을 수가 없다"며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보편적 출생통보제로 가는 것이 모든 아이들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시민연대체인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도 지난 23일 성명을 내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면서도 "모(母)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이런 접근으로는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네트워크는 익명출산제가 "오히려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익명출산제가 사실상 시행되는 국가에서도 영아 살해, 아동 유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경험적 증거"고 주장했다.
◇ 입양특례법·베이비박스 등 놓고 반복된 논란
사실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모자의 생명이나 산모의 사생활, 아이의 기본권과 정체성 등의 가치는 반복적으로 충돌해왔다.
지난 2012년 입양을 하려면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고 입양 동의를 한 후 법원에서 입양 허가를 받도록 절차와 조건을 강화해 입양특례법을 개정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개정은 아동이 자기 부모를 알 권리와 정체성을 가질 권리에까지 무게를 실은 것이었는데, 출산이나 입양 보낸 사실을 드러내길 원치 않는 산모가 아동을 유기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반론도 나왔다.
2009년 처음 등장한 '베이비박스'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가 2011년 35명, 2012년 79명이었다가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입양특례법 개정 이전에는 출생신고와 무관하게 보육원과 입양기관에 아기를 맡길 수 있었으나 입양특례법 시행 후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아동을 베이비박스에 보호했다는 것이 주사랑공동체의 설명이다.
베이비박스를 놓고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라는 의견과, 영아 유기나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알려지기 전후로 연평균 영아 살해 건수가 13.5명에서 8.5명으로 줄었다며 "입양특례법이 아기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선택이 베이비박스면 안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극단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입양관련 단체 관계자는 "뿌리 없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다 결국 뽑힌다.
시설에서 자라다 연고 없이 퇴소한 청년들의 자살률이 높고 자존감이 낮은 이유"라며 "아이들의 정서적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베이비박스가 생명을 살린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모자 생명권·아이 정체성·부모 알 권리 등 가치 충돌 지난 8년 사이에만 2천 명이 넘는 출생 미신고 영유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영아 유기나 '유령 아동'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의 도입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는데 입양특례법, 베이비박스 등과 맞물려 찬반이 갈려온 보호출산제의 경우 입법 과정에서 첨예한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
◇ 병원 밖 출산·유기 막아야 vs 양육 포기 돕기보단 지원이 우선
2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은 경제적·사회적 곤경에 처한 임신부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후 지자체에 아이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2020년 12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듬해 5월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기임산부 및 아동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에도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과 익명 인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도 그 이전부터 보호출산제 도입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을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막을 일종의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를 함께 들고나온 것이다.
일부 부작용 우려나 의료계의 반대를 제외하곤 출생통보제에선 대체로 이견이 없는 데 반해 익명출산제, 비밀출산제로도 불리는 보호출산제는 찬반 논란이 적지 않다.
일단 찬성하는 쪽은 임신부가 신원 노출이나 양육은 원하지 않지만 출산을 원할 경우 안전한 환경에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병원 밖에서 위험천만한 출산을 한다면 임신부와 아이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고, 출산 후에도 영아 유기나 살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출산제가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아이를 뿌리 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만든다는 반대 목소리도 크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를 위한 제도라고 하면서 일단 숨기려고 하는 것부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양육 포기나 입양을 돕기보다 출산과 양육을 택한 미혼모를 위한 지원이 우선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엄마의 정보를 찾고 싶을 때 찾을 수가 없다"며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보편적 출생통보제로 가는 것이 모든 아이들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시민연대체인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도 지난 23일 성명을 내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면서도 "모(母)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이런 접근으로는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네트워크는 익명출산제가 "오히려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익명출산제가 사실상 시행되는 국가에서도 영아 살해, 아동 유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경험적 증거"고 주장했다.
◇ 입양특례법·베이비박스 등 놓고 반복된 논란
사실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모자의 생명이나 산모의 사생활, 아이의 기본권과 정체성 등의 가치는 반복적으로 충돌해왔다.
지난 2012년 입양을 하려면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고 입양 동의를 한 후 법원에서 입양 허가를 받도록 절차와 조건을 강화해 입양특례법을 개정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개정은 아동이 자기 부모를 알 권리와 정체성을 가질 권리에까지 무게를 실은 것이었는데, 출산이나 입양 보낸 사실을 드러내길 원치 않는 산모가 아동을 유기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반론도 나왔다.
2009년 처음 등장한 '베이비박스'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가 2011년 35명, 2012년 79명이었다가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입양특례법 개정 이전에는 출생신고와 무관하게 보육원과 입양기관에 아기를 맡길 수 있었으나 입양특례법 시행 후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아동을 베이비박스에 보호했다는 것이 주사랑공동체의 설명이다.
베이비박스를 놓고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라는 의견과, 영아 유기나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알려지기 전후로 연평균 영아 살해 건수가 13.5명에서 8.5명으로 줄었다며 "입양특례법이 아기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선택이 베이비박스면 안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극단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입양관련 단체 관계자는 "뿌리 없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다 결국 뽑힌다.
시설에서 자라다 연고 없이 퇴소한 청년들의 자살률이 높고 자존감이 낮은 이유"라며 "아이들의 정서적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베이비박스가 생명을 살린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