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중국 외교대변인 브리핑장의 '손님들'
매주 월∼금 현지시간 오후 3시 베이징의 중국 외교부 브리핑룸 '란팅'(藍廳·blue hall)에서 열리는 외교부 대변인 정례 브리핑은 각국 특파원들이 각종 외교 현안에 대한 중국의 공식 입장을 취재할 수 있는 자리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외국 기자가 개별적으로 중국 당국자에게 연락해서 취재하긴 쉽지 않기에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은 각국 특파원들의 소중한 취재 소스다.

근래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장에는 기자들 좌석 뒤에 방청객들이 자리하는 날들이 부쩍 많아졌다.

가끔은 중국을 찾은 외국 정부 관계자 등이 방청하기도 하나 대부분 중국인들인데, 기자가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면 좀처럼 답을 해주지 않는다.

이들이 기자석 뒷공간을 채우고 있는 날이면 대변인 발언의 옥타브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한국 등과의 갈등 현안이 불거진 날, 방청객들까지 있으면 대변인의 성량은 더 커지고, 표정은 더욱 준엄해진다.

그런 날이면 가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질문한 기자에게 답을 하는 것인지, 방청객들을 쳐다보며 답을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특파원 시선] 중국 외교대변인 브리핑장의 '손님들'
방청객들이 대거 자리한 날 브리핑이 끝나고 나면 대변인은 잠시 단상 뒤로 퇴장했다가 커튼콜을 받고 나온 배우처럼 다시 회견장으로 돌아와서는 방청객들과 짧은 담소를 나누는데, 연예인급 환대를 받는다.

이런 풍경을 보며 중국 외교의 국내정치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일이라 외교의 언어는 다른 영역의 말보다는 정제되고 모호함을 띄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불장난하는 자, 불에 타 죽는다",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이 지는 쪽에 베팅하면 후회한다" 등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나 외교관들이 하는 날카로운 말을 듣노라면 중국 외교의 언어가 정치화하는 동시에 절제의 미덕을 잃고 있는 듯하다.

막후에서 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여백의 언어'보다는 명확하게 입장을 선포하고, 국민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이다 언어'를 점점 더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의 국내정치화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 외교의 언어 역시 국내 정치와 연결된 여론의 풍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관계가 악화한 한중 사이에서 외교 언어가 절제의 미덕을 잃거나 정치화하면 상대국에 대한 국민 여론의 반감에 불을 지르고, 그 여론은 다시 정부의 '외교 공간'을 좁히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21일 중국 닝샤의 한 고깃집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로 3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구독 중인 주중 한국대사관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채널에 22일 한국대사관 명의의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가 올라온 것을 봤다.

주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작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 싱하이밍 대사가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위로 서한을 발송한 사실과 서한 내용이 소개돼 있었다.

한중 관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상대의 슬픔 앞에서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정도의 보편 정서는 양국 외교당국 간에 남아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반가웠다.

양국 민간의 교류만큼은 그런 보편적인 정서의 토대 위에서 지금보다 진전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