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청, 구위·국물요리용 토종닭 '우리맛닭' 개발
전문가들 "토종닭의 차별화된 맛 소비패턴 다양화에 긍정적"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계획입니다.

코너 제목은 '좋은 식재료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로 호식탐탐으로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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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식탐탐] ⑪ 10호 닭의 철옹성에 문 두드리는 '우리맛닭'
'10호 닭'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닭의 호수다.

그램 단위로 파는 소, 돼지고기와 달리 닭은 도축을 마치고 머리, 내장, 발, 털을 제거한 '도체'의 중량에 따라 호수로 나눠 판매된다.

1.5㎏짜리 10호 닭의 도축 중량은 951g∼1.05㎏로, '국민 간식'으로 불리는 치킨집 닭이 대표적인 10호 닭이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도축된 닭의 수는 10억2천457만8천 마리로 집계됐다.

이 중 90% 정도가 10호 닭으로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다.

10호 닭 소비를 이끄는 것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외식 메뉴인 '치킨'이다.

한국은 '치킨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닭의 수요는 치킨 소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언제부터 한국인이 10호 닭을 선호했는가를 알아보려면 치킨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촌·농업 사회학 연구자 정은정씨가 펴낸 <대한민국 치킨展(전)>(2014)에 따르면 국내에 처음 치킨이 등장한 것은 1961년 '명동영양센터'가 문을 열면서부터다.

당시 치킨은 엄밀히 말해 현재 우리가 즐기는 프라이드치킨과는 다른 흔히 '전기구이 통닭'이라 불리는 형태였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으로 닭 생산량이 급증하고, 1971년 해표에서 식용유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기름에 튀기는 형태의 치킨이 탄생하게 된다.

1977년 한국 최초의 프라이드치킨 체인점인 림스치킨이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하면서 프랜차이즈 치킨의 시대가 열렸다.

그 뒤로 1984년 KFC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치킨 붐을 일으켰고, 대구지역의 맥시칸치킨, 페리카나양념치킨 등 치킨업체가 양념치킨과 배달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외식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가장이 직장을 잃으면서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치킨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치킨은 외식 시장을 평정하기에 이른다.

치킨은 이때(1997년)부터 한 번도 국내 외식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호식탐탐] ⑪ 10호 닭의 철옹성에 문 두드리는 '우리맛닭'
농림축산식품부가 발간한 <농축산식품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980년 2.6㎏에서 2021년 14.6㎏으로 약 7배 증가했다.

닭 소비량이 증가한 것은 치킨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10호 닭이 국내 표준이 된 것도 주요 닭 소비가 치킨으로 이뤄진다는 점과 특정 중량의 닭을 먹는 게 식습관으로 정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정은정 연구자는 "국내에서 10호 닭의 수요가 큰 이유는 무엇보다 소비자가 가장 익숙한 크기이고, 부위별로 닭을 소비하는 해외와 비교해 온전히 한 마리의 닭을 소비하는 국내 소비자에게는 10호 닭이 적정한 크기이기 때문"이라며 "산업적으로도 국내에 사육되는 육계가 10호 크기일 때 사료 효율이 가장 높고, 도계과정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맛에서도 10호 크기가 가장 선호도가 높고, 레시피 표준을 잡기도 좋다"고 설명했다.

최근 10호 닭이 점령한 한국의 닭고기 시장에 작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과 호남,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부위별 닭 구이를 내놓는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남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토종닭을 숯불에 구워 먹는 닭 구이가 확산하고 있다.

또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일본식 닭 구이를 지칭하는 '야키토리' 식당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 식당들은 닭 한 마리를 온전히 즐기는 기존 한국 소비자의 소비 패턴과 달리 닭을 부위별로 나눠 구운 뒤 손님상에 올린다.

닭을 발골해 부위별 구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30일령의 작은 크기인 10호 닭으로는 무리가 있다.

새로운 형태의 소비에 맞는 닭은 70일 이상 사육한 흔히 토종닭이라 불리는 '큰 닭'이다.

토종닭은 지금까지 주로 백숙용으로 소비됐으며, 보통 10주 2.4㎏ 중량으로 출하된다.

특유의 육향이 강하고, 크기가 커 부위별 구이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호식탐탐] ⑪ 10호 닭의 철옹성에 문 두드리는 '우리맛닭'
국내 대표적인 토종닭 품종으로는 농진청에서 개발한 '우리맛닭'이 있다.

농진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토종닭을 복원하기 위해 1992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은 재래닭 품종을 모으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농진청과 축산기술연구소,양계협회,서울대,충남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재래닭 육용화 연구사업을 추진한 끝에 2008년 토종 우리맛닭 1호가 개발됐다.

우리맛닭은 성장이 빠른 코니시 수컷 종계와 맛이 좋은 재래종 적갈색계, 달걀 생산이 많은 로드아일랜드 암컷 종계를 교잡해 만들었다.

농진청은 성장 속도가 더뎌 사육기간이 긴 토종닭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량을 거쳐 2010년 우리맛닭 1호보다 성장속도가 30% 빠른 우리맛닭 2호를 개발했다.

우리맛닭은 닭고기의 풍미(감칠맛)에 관여하는 물질로 알려진 이노신 일인산(Inosin monophosphate·IMP) 함량이 일반닭보다 많은것으로 확인됐다.

동일한 사육조건에서 길러진 우리맛닭과 일반닭의 다리살과 가슴살 100g당 IMP 함량을 비교한 결과 우리맛닭이 일반닭보다 약 30% 높게 나타냈다.

[호식탐탐] ⑪ 10호 닭의 철옹성에 문 두드리는 '우리맛닭'
추효준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농업연구사는 "전체 육계 시장에서 토종닭의 점유율은 아직 3% 내외로 추정되지만, 새로운 소비 방식에 적합한 우리맛닭과 같은 토종닭이 늘어나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농진청은 토종닭의 육질을 향상시기키 위한 개량 연구와 가공식품 활용 방안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12년째 전북 부안에서 우리맛닭을 사육하는 라현환 우슬재 황토촌 대표는 "국내에서 사육되는 육계와 산란계는 전량 수입하고 있다.

국내 품종인 토종닭을 보존하는 의미에서도 최근 닭 소비 시장의 변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우리맛닭은 구수한 육향과 쫄깃한 육질 등 맛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호식탐탐] ⑪ 10호 닭의 철옹성에 문 두드리는 '우리맛닭'
전문가들도 토종닭이 차별화된 맛을 앞세워 식재료와 소비패턴을 다양화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토종 계통의 우리맛닭은 단순히 시골에서 기른 닭이 아닌 엄연한 개별 품종으로, 닭 구이와 국물 요리에 적합한 토종닭 특유의 육향과 감칠맛이 강한 특성이 있다"면서 "7∼8월 복날 시즌에 맞춰 집중적으로 사육되는 것을 개선해 연중 안정적 수급이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구이 관련 메뉴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토종닭 리소토 메뉴를 개발한 신민섭 루블랑 셰프는 "프라이드용 육계는 사육 기간이 짧아 육향이 느껴지지 않지만, 천천히 기른 우리맛닭 같은 토종닭은 육향이 특히 강하다"면서 "토종닭을 저온으로 수비드해 조리하고 오븐에 다시 넣어 겉을 바삭하게 구워내 봤다.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진한 육수로 리소토를 만들면 큰 닭을 부드럽고, 육향을 극대화해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소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닭도 크기가 커지면 다리살, 가슴살, 안심 등 부위별로 손질하기도 쉬워지고, 조리를 부위별로 달리할 수 있다"며 "예를 들면 가슴살은 부드럽게 섭씨 53도 정도로 미디움 굽기를 하고, 다리살은 높은 온도에서 푹 고아 내 쫄깃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호식탐탐] ⑪ 10호 닭의 철옹성에 문 두드리는 '우리맛닭'
(도움 주신 분들 : 박진우 농진청 홍보팀장, 김승호 주무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