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치즈' 사례 들며 '디지털 규범 제정' 및 국제기구 설치 촉구
소르본대 '파리 디지털비전 포럼'서 연설 후 석학들과 대담
尹, 세계 '디지털 질서' 정립 제안…'파리 이니셔티브' 공개(종합2보)
윤석열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마지막 날인 21일(현지시간) 세계 디지털 질서 정립을 위한 어젠다를 국제 사회에 제시했다.

이른바 '파리 이니셔티브'로, 윤 대통령은 이날 파리 소르본대 라 소르본 캠퍼스에서 열린 '파리 디지털 비전 포럼' 연설에서 이 같은 구상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먼저 디지털 질서 규범 정립의 9가지 원칙으로 ▲ 자유·후생 확대 ▲ 자유로운 거래 보장 ▲ 디지털 격차 해소 ▲ 공정한 접근과 보상 ▲ 적정한 위험 규제 ▲ 불법행위 제재 ▲ 긴밀한 국제사회 협력 등을 내세웠다.

특히 디지털 개발·사용에는 적정한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며 규제 위반은 불법 행위로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규범 집행에 국제사회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을 위한 국제기구를 유엔 산하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스위스 치즈'를 예를 들며 디지털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포럼 마무리 발언에서 "스위스 치즈와 스위스 해물을 시판할 때 식품보건당국에서 정한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사하고, 기준이 충족됐다는 것을 상품에 표시한다"라며 "거래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런 식품들을 구입하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식품 산업이 훨씬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자동차가 성능이 좋아지면서 인명 사고 예방을 위해 속도를 규율할 수도 있지만, 브레이크의 성능을 올리라고 규제할 수도 있다"라며 "브레이크의 기술을 올리라고 한다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 책임보험제도도 결합돼 다른 산업에도 연관 효과를 주고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저는 원래 자유시장주의자이고, 시장에 불필요한 규제가 가해지는 것을 철폐해야 된다고 주장한다"라며 "다만 시장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도 역시 규제이기 때문에 상업의 증진, 공업의 발달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디지털이 연결성과 즉시성 등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국제적"이라며 "디지털 문화와 산업을 더욱 번영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국제적인 예측 가능한 약속과 규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포럼은 지난해 9월 뉴욕 방문을 계기로 발표한 '뉴욕 이니셔티브'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국정 어젠다를 세계에 공유하는 행보다.

윤 대통령은 당시 뉴욕대 '디지털 비전 포럼'과 유엔 연설을 통해 "전 세계적인 디지털 혁신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심화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구상이 B20 서밋, 두바이 미래포럼, 다보스 포럼, 하버드대 연설로 이어지면서 점차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깊어졌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尹, 세계 '디지털 질서' 정립 제안…'파리 이니셔티브' 공개(종합2보)
윤 대통령은 이러한 이니셔티브가 인공지능(AI)에 국한하지 않고, 데이터와 컴퓨터 역량을 포함한 디지털의 모든 영역을 망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크리스토프 케레로 파리대학연합총장도 대담에서 "AI, 메타버스 등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지식 획득에서의 불평등이 있을 수 있고 이는 도전과제"라며 "바로 여기에 다양한 규범과 윤리가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케레로 총장은 또 "디지털 전환이라는 중요한 시대를 맞아 국경을 넘어서는 협력이 필요하다"며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한·프랑스간 디지털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AI 역량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면서 경제·사회·정치 분야는 물론 안보와 인간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돼 새로운 AI 윤리규범 확립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다.

미국은 이미 AI 권리장전 청사진을 발표했고, 유럽연합(EU) 의회도 최근 AI 규제법안을 의결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이 '파리 이니셔티브'를 제안하면서 국제사회 관련 논의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대통령실은 전망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현지 프레스룸 브리핑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만든 것처럼 디지털 규범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尹, 세계 '디지털 질서' 정립 제안…'파리 이니셔티브' 공개(종합2보)
이어 "그러한 국제기구가 만들어지면 그 과정에서 적어도 우리나라가 불이익은 받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통령실은 '파리 이니셔티브'가 계몽주의와 시민혁명 발원지인 파리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연설 서두에서부터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연대에 기초해 세상의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바꿨다"며 프랑스 혁명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파리 이니셔티브' 제안 후 플뢰르 펠르랭, 라자 샤틸라, 마르쿠스 가브리엘,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과 함께 법·철학·윤리적 관점에서 디지털 기술의 의미를 조망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규범이 지향할 가치를 논의했다.

펠르랭은 아시아계 최초 프랑스 장관으로서 한국계 프랑스인, 이른바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디지털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조망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통해 기술과 인문학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디지털 전환 등 사회 이슈를 도덕과 윤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안'(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AI가 넘을 수 없는 인간 능력'(철학자 대니얼 앤들러) 등을 놓고 참석자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