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길이는 과거와 비슷하지만 정보량 늘고 생소한 개념 등장
"전문가도 못 풀 정도로 꼰 것은 문제"…수능 한계 봉착 지적도
킬러문항 2010년대 후반부터 수면 위로…영어 절대평가 영향?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영역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저격하면서 킬러 문항이 출현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킬러 문항은 영어 영역 절대평가 전환에 따라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출제 당국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30년째 이어온 수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의 반증이라는 시각도 있다.

따라서 킬러 문항의 등장이 수능을 비롯한 대입 체제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 징표라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교육계에 따르면 킬러 문항, 특히 국어 영역의 독서 부문 난도가 급격하게 상승한 것은 2010년대 후반이다.

국어 영역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시험이 어려울수록 상승하는데, 현 표준점수 체계가 도입된 2005학년도부터 2018학년도까지는 127점∼140점에 그쳐 평이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9학년도는 역대 최고인 150점을 찍더니 2020학년도 140점, 2021학년도 144점, 2022학년도 149점을 기록하며 어려웠다는 평을 받았다.

지문의 길이는 1990년대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정보의 양이 많고 생소한 개념이 등장하는 지문이 속속 출현하며 시험 난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역대급 '불국어'로 꼽힌 2019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 31번의 경우 과학과 철학이 융합된 지문을 읽고 만유인력에 대한 별도 제시문을 해석해야 하는 문항이어서 고교생 수준에서 풀기 어렵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교수)이 최근 페이스북에 "어안이 벙벙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는 글을 올리며 개선을 촉구한 문제 역시 2020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킬러 문항으로 꼽힌 40번이었다.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을 다룬 경제 지문을 읽고 풀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지문에 제시된 BIS 비율 계산식에 따라 비율을 직접 계산해야 풀 수 있어 까다로운 문제라는 평을 받았다.

킬러문항 2010년대 후반부터 수면 위로…영어 절대평가 영향?
출제 당국이 2010년대 후반부터 킬러 문항을 출제하며 변별력을 확보한 것은 영어 절대평가 전환과 연관이 있다는 시각이 있다.

정부는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영역에서 원점수를 기준으로 90점이 넘으면 1등급을 부여하는 절대 평가를 도입했다.

영어 시험 난이도도 이전보다 쉬워졌다.

주요 과목 가운데 영어 영역의 변별력이 사라지면서 출제 당국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댈 수 있던 영역은 국어 외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가뜩이나 수학 사교육비가 높은 상황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학 난이도를 건드는 것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1994학년도 수능이 도입된 지 20년 이상 흐르면서 대부분 문제 유형이 간파됐기 때문에 킬러 문항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예전 같은 난이도의 문제를 내면 더 이상 상위권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역할을 못 한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과정 범위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수능이 30여년 되면서 대부분 문제 유형이 나왔고 이를 수험생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렵게 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교육계 인사들은 킬러 문항이 대학 교수조차도 풀기 어려워진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는 결국 수능 체제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지난달 국가교육위원회가 개최한 '2023 미래 국가교육 대토론회'에서 기조 강연을 맡은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수능 1등급을 가려내기 위한 고난도 문항·킬러 문항은 꼬고 또 꼬아서 만들기 때문에 전문가도 풀지 못할 정도로 매우 어렵다"며 수능과 같이 시간제한 내에 문제 풀이를 요구하는 평가 방식이 지속되면서 미래교육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