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스파이웨어, 남편 살해에 이용돼" 이스라엘 NSO에 소송
피살 언론인 카슈끄지 아내 "사우디 왕따되길 바라진 않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비판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아내가 "남편은 사우디가 '국제 왕따'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난 엘라트르 카슈끄지는 17일(현지시간) 방송된 미국 NBC와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와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의 합병 추진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LIV 골프와 PGA의 합병 추진은 사우디가 카슈끄지 암살 등으로 인해 인권 문제로 비판받는 가운데 '오일머니'로 국제 골프계를 장악하려 한다는 우려를 낳았다.

론 와이든(민주·오리건) 연방 상원 금융위원장은 합병에 따른 국가 안보 문제가 없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며, 미 법무부도 이같은 합병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하난은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왕따 국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자말 카슈끄지가 조국이 그렇게 되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LIV가 PGA를 합병하는 것이 당신은 괜찮은가"라고 거듭 묻자 하난은 "이는 일반적으로 계약의 문제일 뿐"이라며 "나는 정신 나간 범죄자 20명의 행각 때문에 사우디가 고통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자신이 싸우는 대상은 사우디 자체가 아닌 남편 암살의 배후라는 뜻이다.

피살 언론인 카슈끄지 아내 "사우디 왕따되길 바라진 않아"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카슈끄지가 2018년 살해된 이후 미 정보기관은 배후로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그를 '지구촌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난은 지난 15일 자신이 거주하는 버지니아주에 있는 연방 법원에 이스라엘 사이버 정보 회사 NSO 그룹을 상대로 액수가 특정되지 않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난의 휴대전화 2대에 NSO 그룹의 강력 해킹 스파이웨어 '페가수스'가 설치돼 암살자들이 카슈끄지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이용됐다는 주장이다.

2021년 프랑스의 비영리 단체 '포비든 스토리즈'가 이끄는 국제 탐사보도 언론 그룹은 페가수스와 관련된 전화번호 목록을 입수했는데, 여기에는 하난의 번호가 포함돼 있었다.

하난 측은 소장에서 "자말의 살해에 이르기까지 거의 1년간 하난의 전화들은 NSO 그룹의 스파이웨어에 침투당했다"며 "하난은 이후 자신의 기기에서 빠져나간 정보를 이용한 사우디 요원들의 손에 남편의 삶이 단축됐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난은 "사회 활동에 안전하게 참여하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살펴야 하며 극도의 경계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피살 언론인 카슈끄지 아내 "사우디 왕따되길 바라진 않아"
이날 인터뷰에서도 하난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심어진 스파이웨어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NBC는 전했다.

카슈끄지가 시신도 찾지 못하도록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사우디 정부는 애초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는 사우디 정보요원들이 카슈끄지에게 사우디행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했으며 무함마드 왕세자는 개입하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NSO 그룹은 카슈끄지 암살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