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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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대 초반까지 밀리면서 한국 경제에 주름살이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과 경쟁하는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여행수지 적자도 커질 수 있어서다.

14일 원·엔 환율은 지난 5월 말(951원9전)보다 4.1% 낮은 100엔당 912원46전을 기록했다. 연고점(1003원61전) 대비 9.1%, 연초(971원93전)보다는 6.1% 하락했다.

수출기업·여행수지 '엔저 비상'
이 같은 엔저 현상은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겹치는 제품이 많은 제조업이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수출경합도는 69.2다. 100에 근접할수록 경합도가 높다는 뜻인데 한·일 경합도는 한국과 미국(68.5), 한국과 독일(60.3), 한국과 중국(56.0)보다 높다.

수출 구조가 비슷한 만큼 엔저로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 한국 제품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경연은 미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 하락하면 한국의 수출이 0.61%포인트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환율에 민감한 중소기업은 엔저 현상이 심해지면 수출 경쟁력이 더 떨어질 우려가 있다.

여행수지 적자가 커질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요즘 한국에 비해 일본 물가가 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본 여행이 늘어나는데,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일본 여행의 매력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일본으로 여행 간 한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80%가량 회복했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팬데믹 이전의 40%에 그쳤다. 한국의 1~4월 누적 여행수지 적자는 37억3360만달러에 달했다. 이미 큰 폭의 여행수지 적자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원·엔 환율 하락이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엔저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원·엔 환율이 하락한 것은 일본은행이 초저금리 기조를 장기간 이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이 큰데 일본은행이 이런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일본은행은 2016년 이후 기준금리를 연 -0.1%로 유지하고 있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연 0.5% 이내로 묶는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펴고 있다. 만성적인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올 4월 “긴축 전환 지연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2%를 넘을 위험보다 성급한 긴축의 위험이 더 크다”고 했다. 초저금리 유지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행의 이 같은 행보는 세계 각국이 작년부터 금리 인상 등 긴축 기조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엔·달러 환율은 연초 127엔대에서 최근 140엔대로 상승했다(엔화 약세). 단기적으로 달러당 145엔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