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후 하락세…"엘리트 스포츠 성격 재정립할 좋은 기회"
팀 코리아 단합심 키우기에 전력…"네가 대한민국이다" 태극전사 '기 살리기'
[아시안게임 D-100] ⑦ 장재근 "선수촌 존재 의미를 묻는 대회"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가 이대로 무너지면,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시선이 늘어날 겁니다.

그 피해는 여러분들에게 갑니다.

'이번에는 한 번 못 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우리가 쉽게 무너지면, 정말 어려운 시간이 올 수 있다고 봅니다.

"
국제 종합대회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 '팀 코리아'의 요람인 선수촌의 수장 장재근(61) 선수촌장이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각 종목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진천선수촌은 국가 차원에서 국비를 들여 엘리트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장소다.

이런 메달의 산실을 갖춘 나라는 선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2012년 런던하계올림픽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타는 중이다.

런던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9개를 획득해 메달 종합 순위 5위에 올랐던 한국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9개 등 21개의 메달로 8위로 뒷걸음질 쳤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6개의 금메달에 머물러 16위로 밀려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래 일본에 24년 만에 종합 순위 2위를 내줬다.

팀 코리아를 대표하는 간판스타의 부재, 전통의 메달박스인 유도·레슬링의 부진, 가뜩이나 취약했던 저변 붕괴 등이 겹쳐 한국 스포츠의 영화는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장재근 촌장은 2024 파리하계올림픽의 전초전인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진천선수촌의 존재 이유를 묻는 대회로 규정하고 그간 든든하게 지원받아온 태극전사들에게 국가대표의 사명감으로 대회에서 혼신의 투지를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육상 단거리 스타 출신으로 1982년 뉴델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 200m를 연속 제패한 장 촌장은 지난 3월 진천선수촌장으로 취임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100일 앞두고 진천선수촌 선수촌장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8일은 취임 100일을 맞는 날이기도 했다.

다음은 장재근 선수촌장과 문답이다.

[아시안게임 D-100] ⑦ 장재근 "선수촌 존재 의미를 묻는 대회"
-- 취임 3개월을 맞았다.

아시안게임 100일을 앞둔 선수촌 분위기는 어떤가.

▲ 태릉선수촌 시절과 비교해 선수촌 면적이 4배가 커졌다.

선수촌장이 해야 할 일도 그만큼 많아진 셈이다.

많이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여러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였는데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인사도 안 하더라. '우리는 국가대표로 한 팀이자 한 식구다' 이런 마인드가 많이 사라져서 취임 후 단합심을 키우고자 노력했다.

새벽 5시 30분에 모두 모여 아침 운동을 할 때, 2주마다 금요일에 산악 러닝 및 구보를 할 때도 가장 먼저 서로 인사하며 국가대표로서 하나 된 모습을 키우도록 장려하고 있다.

선수단 분위기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요즘 가장 큰 문제가 컴퓨터, 휴대 전화 등으로 밤늦게까지 온라인 게임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달 전에 매일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선수촌 내 초고속 인터넷망을 차단했다.

현재 금요일 오후에 외박을 나가는 시스템도 7월부터는 2주에 한 번씩 토요일 오전까지 훈련하고 외박하는 것으로 바꿔 훈련 분위기를 끌어올릴 참이다.

[아시안게임 D-100] ⑦ 장재근 "선수촌 존재 의미를 묻는 대회"
-- 현재 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인원은.
▲ 20개 종목 선수와 지도자 약 600명이 훈련 중이다.

아시안게임을 두 달 정도 앞둔 7월 중순에는 게스트하우스를 합쳐 최대 1천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입촌할 것으로 예상한다.

-- 항저우 아시안게임 40개 정식 종목에 모두 선수단을 파견하나.

▲ 그렇다.

각 종목 선수단 전형을 심사하는 8일 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선수단 규모를 역대 최다인 1천180명으로 정했다.

-- 역대 최다라면 그에 걸맞은 성과를 기대할 텐데 성적 전망은 어떤가.

▲ 5년 전 아시안게임과 2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는 참패했다.

(순위가) 떨어지는 건 쉬워도 올라가는 건 참 어려워 고민이 많다.

현재 중국이나 일본이 대표 선발을 끝내지 않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의 성적을 가늠할 수 없다.

상승세를 탄 배드민턴과 탁구, 수영을 비롯해 '효자 종목'인 양궁과 펜싱, 그리고 종주국을 자부하는 태권도가 성적을 내준다면 선수단 내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 종목의 초반 기세가 무척 중요하다.

김학균 배드민턴 감독이 정말 선수들을 열심히 지도한다.

그래서 성과가 나지 않나 생각한다.

탁구와 태권도도 최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다른 종목의 선전을 자극하는 이런 좋은 흐름을 타고 서로 성적을 내보자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아시안게임 D-100] ⑦ 장재근 "선수촌 존재 의미를 묻는 대회"
-- 아시아 2위 탈환은 가능한가.

▲ 5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이 금메달 75개, 우리가 49개를 땄다.

그 격차가 도쿄올림픽으로도 이어졌다.

우리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20년 동안 일본을 앞선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에는 우리가 10년 정도 일본에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안일했고, 일본은 절치부심한 결과다.

목표는 아시아 2위 탈환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다만, 이번에 일본과 격차를 금메달 수에서 10개 이내로 줄인다면 내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우리가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은 있다.

한국 스포츠 유전자인 불굴의 투지를 살린다면 그 격차도 줄여갈 수 있다고 본다.

--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메달보다도 아름답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더 환호할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

선수촌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 생활 체육과 전문(엘리트) 체육은 공존하면서 발전해야 한다.

다만 목적과 목표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생활체육을 비롯한 전체 체육의 목적이 다 같이 즐기는 것에 있다면, 스포츠로 성공을 꿈꾸는 엘리트 체육인들의 목표는 좋은 성적에 있는 게 당연하다.

'즐기면서 1등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최근 국제대회에서 하락세에 있다 보니 '국가대표 선수들은 뭐하는 것이냐'라고 비판하는 견해도 분명히 있다.

국가대표로서 여러 국제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해 온 엘리트 스포츠인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자신이 이룬 성취감을 국민들에게도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목표로 뛴다.

난 그래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 코리아를 위해 뛰라고 하지 않는다.

바로 '네가 대한민국이니까' 네 꿈을 위해, 네 목표를 위해 뛰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1등을 하면 태극기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고, 애국가가 나온다.

그 꿈을 위해 선수촌이 뒷받침하겠다고 얘기한다.

-- 올해 성적이 파리올림픽에 미칠 영향은.
▲ 아시안게임은 진천선수촌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대회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성격을 재정립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선수와 지도자가 이를 정립한다면 우리는 저력이 있어 파리올림픽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다고 전망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