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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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교향악축제에 참가한 KBS교향악단은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 다른 참여 오케스트라들과의 차별화를 꾀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우선 올해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익단은 작곡가의 후기 걸작인 교향적 무곡과 더불어 레어 레퍼토리인 교향시 ‘바위’를 선곡하여 작곡가의 심포니스트로서의 새로운 위대함을 부각하고자 했다.

더불어 올해는 20세기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의 탄생 100주년. 리게티 음악은 음악적 난해함과 낮은 대중성 덕분에 자주 연주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 이러한 와중에 KBS 교향악단이 이번 교향악 축제에서 유일하게 리게티의 작품(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함으로써 음악사적인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 옛날 KBS 1FM 박은희 진행의 실황 음악회에서 귀하게 접할 수 있었던 다양한 20세기 현대음악들의 낯선 쾌감이 연상된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감흥은 아닐 것이다.

이 중요한 연주회의 지휘를 맡은 마에스트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인 정치용.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라흐마니노프의 ‘바위’는 20세의 젊은 작곡가가 갖고 있던 남다른 감수성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첫 저역 현들의 어둡고 강렬한 울림부터 하프와 타악기, 현악기와 목관의 영롱한 울림까지, 드뷔시와는 또 다른 소묘적인 색채감과 러시아 고유의 짙은 서사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엑스시를 거친 뒤에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우수 어린 여운이 주는 감동이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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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게티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무대에 피아노가 뚜껑 없이 지휘자 오른쪽에 있는 것이 특이했다.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작고 특이한 악기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뚜껑이 달린 피아노의 전면을 향한 지향성을 포기하고 앙상블로서의 음향 블랜딩을 꾀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는데 오케스트라의 진행에 피아노 사운드가 거의 가리지 않고 또렷하게 살아나 작곡가의 현대적인 어법과 생경한 음향이 생동감 넘치게 살아났다.

그리고 박종화는 자신감 넘치는 터치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 덕분에 악장마다 다채롭게 변화하는 피아노 파트의 표현력과 복합적인 이야기를 명징하게 접할 수 있었다. 에술의전당 콘서트 같이 큰 공간을 커버하기 위함인지 전체의 음향 볼륨이 다소 큰 탓인지 섬세한 디테일과 특징적인 요소들에 비해 다이내믹과 근육질적인 진행이 돋보인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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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적 무곡은 KBS 교향악단이 작년 요엘 레비 지휘로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 바 있는 레퍼토리인 만큼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표현과 치밀한 앙상블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첫 악장의 강렬한 셋잇단음의 하강 멜로디부터 러시아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한편, 말러의 금관 시그널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인상적인 알토 색소폰의 감각적 울림, 마지막 교향곡 1번 1악장 주제선율의 아름다움 모두 완벽했다.

2악장에서 정치용은 무곡으로서의 왈츠 리듬을 강조하기보다는 비감 어린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비올라의 거친 음부터 클라이맥스의 타격감까지 장대한 서사를 완성해냈다. 마지막 악장은 작곡가의 유작으로서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대목으로서 장대한 에너지와 독백과도 같은 경건함의 대비, 스페인적인 열정과 러시아적인 멜랑콜리의 대조, 강렬하지만 낭만적인 여운을 남기는 코다까지를 적확하게 그려냈다. 독보적인 악단의 위상을 알린, KBS 교향악단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기록될 연주회였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