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석 작가, 구상 후 13년 만에 출간…"심장이 뜨거운 인간으로 되살리고 싶었다"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난 홍범도 장군의 삶…대하소설 '범도'
"잡는다고 명중이 아니었다.

일격에 낙명시키는 것이 명중이었고, 그것이 포수의 윤리라고 나는 신포수에게 배웠다.

"
1920년 6월 7일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며 독립군에게 최초의 대규모 승리를 안겨준 홍범도 장군(1868∼1943)은 본래 포수였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범도'는 산야를 떠돌다가 '신포수'를 만나 포수로 성장한다.

먹고 살 방도를 찾아 열다섯의 나이에 평양군영에 입대한 범도는 민란의 참상과 위정자들의 부조리한 행태를 목도하고 군영을 떠나 다시 포수가 된다.

군영에서 함께 싸운 동료의 가족들이 일본군에게 몰살당한 것에 분개한 범도는 '단독여단', 즉 혼자 꾸린 군대가 되어서 일본군을 한 명씩 처단해 나간다.

어린 나이에 처음 총을 잡았을 때 신포수에게서 배운 '포수의 윤리'는 홍범도가 향후 의병으로, 독립군 대장으로 활약하면서 늘 잊지 않는 삶의 신조가 된다.

뛰어난 사격술로 표적의 눈과 귀 사이의 급소를 조준하는 범도는 적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고 일격에 필살한다.

방현석의 대하 역사소설 '범도'는 홍범도가 의병의 명사수가 되고 봉오동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를 범도의 일인칭으로 설정해 홍범도란 역사적 인물의 내면세계에 독자들이 쉽게 빠져들게 한 것이 눈에 띈다.

여기에 빠른 장면 전환과 한반도를 넘어 만주와 연해주까지 펼쳐지는 장쾌한 스케일, 전란의 혼돈 속에서도 감당해야 할 '윤리'를 잊지 않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로 인해 두 권을 합해 1천3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버겁지 않다.

일본군을 상대로 한 독립군의 활약상과 인간적 고뇌를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린 소설이 드물다는 점에서 출간 소식이 반가운 작품이다.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난 홍범도 장군의 삶…대하소설 '범도'
1980년대에 노동운동가로도 활동하며 중편 '새벽출정' 등 참여문학 계통의 묵직한 작품들을 여럿 써낸 방현석이 이번엔 항일독립운동사로 눈을 돌렸다.

첫 구상 후 13년 만에, 집필을 시작한 후로는 3년을 꼬박 매달린 끝에 대작을 완성해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만주와 중앙아시아, 러시아 각지를 누볐다고 한다.

방현석은 '작가의 말'에서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범도'에는 홍범도를 비롯해 신포수, 백무현, 백무아, 남창일, 김수협, 장진댁, 금희내, 지청천 등 다양한 실존 또는 허구의 인물들이 혼돈의 와중에 낡은 질서를 깨부수고 새 길을 열어젖히는 광경이 생생하게 담겼다.

방현석은 "홍범도는 그들 모두를 연결해내며 그들의 비애와 희열, 도전과 좌절을 함께 겪어낸 관찰자"라면서 "그들 모두를 심장이 뜨거운 인간으로 되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 본인은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했지만 소설의 주인공으로 부활한 홍범도는 비범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무엇을 한 적이 있었던가.

어떤 자리를 탐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13년 동안 그의 삶을 추적하고 쓰면서 그러한 단서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
문학동네. 전 2권. 각 권 632·672쪽.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난 홍범도 장군의 삶…대하소설 '범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