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부발전이 풍력, 수소 등 발전소 자산을 유동화해 민간으로부터 32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드는 비용은 매년 증가하는 반면 재무구조 악화로 투자할 자금이 여의치 않자 고안해낸 고육지책이다. 전문가들은 남부발전 등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들이 한전의 적자를 같이 떠안고 있는 데 따른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한전뿐 아니라 발전자회사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인천빛드림본부 전경.
신인천빛드림본부 전경.

자산 유동화로 3800억원 부채 축소

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남부발전은 지난달 ‘그린에너지인프라펀드 조성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남부발전이 운영하는 풍력, 수소 등 발전소 자산을 유동화함으로써 민간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는 게 골자다.

계획에 따르면 남부발전은 해당 펀드에 최대 800억원을 현금 또는 현물로 출자하고, 은행과 증권사 등 민간으로부터 3200억원을 투자받아 총 4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한다. 유동화할 자산으론 △신인천 연료전지 △영월 연료전지 △한경풍력 △성산풍력 등 자체 설비와 △KOSPO영남파워 △정암풍력 등 특수목적법인(SPC) 사업 자산이 거론되고 있다. 남부발전은 출자금과 부채 비율 등을 감안해 유동화 자산과 보유 지분을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유동화한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은 투자자와 남부발전이 공유한다. 남부발전은 자산을 유동화해 조달한 자금으로 제주 한동·평대 해상풍력(100㎿ 규모), 충남 당진 초락도리 태양광(200㎿) 등 신재생 신규 사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남부발전은 이 같은 자산 유동화 및 펀드 조성을 통해 작년 말 기준 8조7029억원인 부채 규모를 3800억원가량 감축하고, 부채 비율도 147.6%에서 약 14%포인트 축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부발전은 다음달까지 산업통상자원부 및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오는 9월께 펀드 출자 약정을 맺을 계획이다.

전기요금 현실화 없인 ‘임시방편’

남부발전이 자산 유동화에 나서는 건 재무 상태 악화와 투자비 급증이라는 이중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남부발전의 영업이익(별도기준)은 2021년 198억원에서 지난해 -681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작년 부채 비율은 2021년(173.4%) 대비 소폭 개선됐으나 인도네시아 바얀리소스 주가 폭등 영향을 제외하면 188%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작년 6월 기재부는 남부발전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관련 투자 금액은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다. 남부발전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설에 2조3000억원, 신재생에너지 인프라에 5000억원 등 4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한전이 최근 발표한 ‘제10차 송·변전설비계획’(2022~2036년)에 따라 투자 금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오르다 보니 남부발전이 자금을 조달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신규 투자 금액을 조달하기 위한 복안으로 펀드 조성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한전의 적자 규모가 늘어날수록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발전사가 짊어지는 적자폭도 함께 커지는 구조인데, 전기요금이 에너지 가격 급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한전이 흑자로 전환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작년 32조655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7조8082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의 적자가 자회사까지 넘어오고 있는 와중에 추진하던 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짜낸 방안 같다”며 “자산 유동화만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