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간 레일 타야 도착…'접근금지' 철망설치 등 폐쇄작업 한창
옛 모습 일부 간직한 탄광 마을, 아쉬움 반 기대 반

[※ 편집자 주 = 118년을 이어온 전남 화순탄광이 오는 30일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시대환경 변화에 따른 예견된 일이라지만 정작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못내 아쉬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폐광을 앞둔 화순탄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4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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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화순탄광] ② 지하 480m 최하층부, '막장은 지금'
"평생 삶의 터전이었는데 제 손으로 문을 닫네요"
지상에서 수직으로 480m, 거리로 2.4㎞ 떨어진 전남 화순광업소 동갱(탄광) 최하층부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탄광 내부의 이동 수단인 '인차'를 타고 체감상 30~45도 기울기의 내리막길을 하염없이 내려가야 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순간적인 덜컹거림과 아슬아슬 머리가 닿을 듯한 갱도의 높이에 화들짝 놀라며 '인차에서는 절대 일어서지 말라'던 안전교육자의 거듭된 당부는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차를 몇차례 갈아탄 끝에 40여분만에 도착한 최하층부에서도 탄광의 최전선인 막장까지는 수평으로 수㎞를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던 광부들은 매일 같이 이런 길을 거쳐 막장으로 향했다.

막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아치형 지지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나무 지지대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붕괴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지만, 지금은 철제 지지대를 써 붕괴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탄광을 다녀본 지질학자나 광산 관계자들이 화순탄광을 방문하고선 '호텔 광산'이라고 칭할 정도로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아듀 화순탄광] ② 지하 480m 최하층부, '막장은 지금'
헬멧에 부착된 작은 랜턴 하나로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의 공간을 얼마나 걸었을까.

바람길이 잘 나 있는 듯 답답함은 전혀 없었지만, 지열과 높은 습도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막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출입 금지' 팻말을 건 커다란 철망이 단단히 고정돼 갱도 전체를 가로막고 눈앞에 나타났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폐광을 앞두고 안전조치 차원에서 설치된 철망이었다.

이 철망을 직접 설치했다는 30년 차 광부는 이제는 가지 못할 철망 너머의 막장을 향해 시선을 떼지 못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삶의 터전이었던 곳에 철망을 설치하면서 참 허무했다"며 "마치 인생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동료들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던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들키기 싫은 듯 랜턴 빛이 닿지 않은 어둠을 향해 얼굴을 감췄다.

최하층부뿐만 아니라 탄광 내부 곳곳에서는 폐광을 앞둔 막바지 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석탄 생산은 올해 4월부터 이미 중단됐고, 이제 일부 인원만 남아 생산에 사용했던 장비를 수거하거나 정리가 끝난 갱도를 폐쇄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아듀 화순탄광] ② 지하 480m 최하층부, '막장은 지금'
생산된 석탄을 집하장까지 자동으로 옮겨주던 컨베이어식 벨트도, 커다란 석탄을 잘게 부숴주던 중대형 장비도 이제는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막장에서 생산된 석탄을 담아 집하장으로 옮기던 광차에는 이제 석탄 대신 작업 장비가 담겨 어디론가 옮겨졌다.

광부들이 이용하던 휴게실 역시 인스턴트 커피 몇 봉지만 남겨진 채 텅 비었다.

차근차근 이별을 준비하던 광부들 사이에선 다음 진로를 걱정하는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한 광부는 "가족들 먹여 살리려면 건설 현장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다른 광부는 화순탄광보다 1~2년 늦게 폐광하는 강원 탄광으로 가겠다고 했다.

화순광업소 박국봉(44) 안전과장은 "폐광이 되면 이분들은 다 갈 곳이 없다"며 "시대 흐름에 따라 폐광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면 대체 산업이 빨리 마련돼 광부들이나 광부들의 자녀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들과 동고동락한 광산 마을 주민들도 폐광이 아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최전성기 시절 북적이던 술집과 식당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지만, 일을 막 마친 광부들이 선 채로 막걸리를 마시던 조그마한 식당과 사택이 모여있던 마을 앞 슈퍼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아듀 화순탄광] ② 지하 480m 최하층부, '막장은 지금'
구암마을 김종현 이장은 "최전성기 때에는 돈이 넘쳐나 월급날만 되면 북적이는 사람들로 마치 장이 선 것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주민 김창식 씨도 "탄광이 있어서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탄광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먹고살았다"며 "이제는 영영 사라진다고 하니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이어 "폐광은 되지만 대체 산업을 개발한다고 하니 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