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너가 아닌 디자이너"…동물적 감각의 'M&A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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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화학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로 그룹 체질 개선
부산엑스포 유치에 최근 올인…재계 맏형으로 역할 다할 것
“회장님, 승자의 저주가 우려됩니다. 인수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입니다.”주요 경영진의 얘기를 듣고 있던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최 회장은 임원들에게 “내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야성적 충동)을 믿어라”라며 “인수 가격은 중요치 않고 인수 후의 기업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먹히지 않자 “하이닉스 인수는 국가 경제를 위한 것”이라며 “재무 부담이 커 인수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경영자는 멀리 봐야 한다”고 설득했다. 결국 최 회장의 뜻대로 하이닉스 인수가 결정됐고, 마감 7분 전에 SK는 하이닉스 인수 입찰서를 제출했다. 당시 인수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4조65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7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SK그룹 핵심 계열사로 자리잡았다.
2011년 11월 10일 새벽 서울 종로 SK서린사옥에선 전날 시작된 마라톤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그룹 주요 경영진이 모두 자리했다. 하이닉스 입찰에 참여할지 말지를 정해야 했다. 이날이 입찰 마감일이었다. 당시 주요 경영진은 최 회장에게 인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이닉스가 누적된 적자와 워크아웃 등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던 상황이어서 인수 의향을 보이던 기업들마저 중도 포기가 잇달았다. 이 때문에 두 차례나 인수가 불발된 터였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1998년 그룹 회장을 맡은 최 회장은 당시 세간의 우려와 달리 그룹을 국내 2위에 올려놨다. 1998년 33조원이던 그룹 자산은 올해(4월 말 기준) 327조원으로 10배로 불어났다. 4조원이 안 되던 그룹 시가총액은 137조원을 웃돈다. 임직원 채용도 늘어 2만4000명이 속해있던 SK그룹엔 지금 12만6000명의 직원이 일한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
최 회장이 학창시절엔 매주 주말마다 특이한 가족 모임 있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4시간씩 이어진 점심이나 저녁 자리였는데, 최종현 선대회장을 비롯해 최 회장,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수석 부회장, 큰 아버지의 사촌인 최신원 전SK네트웍스 회장,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 행사는 최태원 회장이 미국 시카고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가족 모임은 대개 경영 강의와 토론으로 채워졌다. 토론 자리는 결국 정치, 사회, 경제, 과학 등의 분야로 흘렀고, 이 때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최 회장이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고민할 때 결국 이과(물리학)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한 배경이기도 하다.
최근 통인시장에서 열린 대한상의 서포터즈와 만찬에서 한 학생이 최 회장에게 "알바를 해본 적 있는지?"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에 최 회장은 "학창시절 과외 알바를 해본 적 있으며,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가르쳤다"고 답하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회장 오른 ‘재계 막내’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마친 최 회장은 1992년 당시 선경(현 SK)에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로부터 회장 취임까지 6년(199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남들은 고속 승진이라고 했지만, 내막은 따로 있다. 그해 8월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갑작스레 타계한 까닭이다. 최태원 회장은 당시 38세였다.
서른여덟의 최 회장이 외환위기 시기에 부채비율이 500%에 달하는 그룹을 맡으면서 안게 된 부담감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현대의 정주영 회장, LG의 구본무 회장 등 ‘경영 9단’ 대선배들도 버거운 시기에 그룹 CEO(최고경영자)를 맡은 그의 첫 과제는 당연히 ‘생존’이었다고 한다. 불혹(不惑)도 안 된 나이에 2만 명이 넘는 식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상당했다. 최 회장은 이때 기억을 올해 신년사에서 끄집어냈다. “SK의 역사를 돌아보면 고난을 극복한 뒤에 더 큰 도약이 있었다.”

M&A의 마술사
최 회장의 승부수엔 M&A가 있었다. 하이닉스를 시작으로 거침이 없었다. 2017년엔 낸드전문 기업인 도시바메모리(현 키오시아)에 4조원 규모 지분 투자를 했다. 2015년엔 반도체 제조용 특수가스 회사인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샀고, 2017년엔 웨이퍼 회사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도 손에 넣었다. 2019년 미국 듀폰 SiC웨이퍼사업부를 품었고, 2020년엔 인텔의 낸드사업부를 10조3000억원에 인수했다. 하이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것이다.반도체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에너지 화학에서 반도체 소재 등으로 바꾸기 위해 화학사들도 M&A를 통해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체질 개선에 나섰다. SK종합화학은 다우케미칼 에틸렌아크릴산(EAA) 사업부를 샀고, SKC는 세계 1위 동박업체인 KCFT를 품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동박을 확보해 배터리 소재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현재 SK넥실리스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테슬라가 직접 찾아와 동박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바이오 시장도 미래 먹거리로 선점하면서 미국의 의약품 생산회사인 암팩(AMPAC)을 SK그룹 계열사로 들였다.

내수에서 수출로 화학에서 소재로
과거 SK를 향하던 비판 중 하나이던 내수기업이란 말도 M&A를 통해 시나브로 사라졌다. 당시 SK는 “전국민으로부터 매달 기름값과 통신비를 현금으로 걷어가는 기업”이라는 말을 들었다. SK정유와 SK텔레콤이 그룹의 주요한 두 축이 되면서 생긴 말이다.하지만 M&A를 통해 반도체 배터리 석유화학 수출, 바이오 등으로 ‘피버팅’하면서 SK그룹의 지난해 수출액은 83조원이 넘었다. 지난해 한국 수출(864조원)의 10%를 차지했다.

이렇게 현재 SK그룹의 모습이 완성됐다. 과거 에너지 화학 정보통신 중심의 그룹에서 반도체와 소재, 바이오, 그린에너지, 디지털 등이 주 사업영역이 됐다. 더 나아가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가 주력 산업으로 정해졌다. 최 회장은 BBC사업에 2026년까지 247조원을 투자하고 5만 명의 국내 인재를 뽑으라고 주문한 상태다.
“오너가 아닌 디자이너”
SK그룹에선 다른 회사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임원, 직원, 임직원이란 말이 없다. 대신 구성원이라고 칭한다. 주주 및 협력사 등을 통칭하는 이해관계자도 그 중 하나다. 수펙스추구협의회도 다른 그룹에는 없는 조직이다. 수펙스는 ‘SUPer EXcellent’를 줄인 말로, 관계사 간 협의를 통해 그룹의 미래를 논의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의사 결정을 하진 않는다. 논의와 협의, 토론만 한다. SK그룹은 “최고협의기구”라고 표현한다.이런 독특한 단어들에는 최 회장이 최고경영자로서 조직원을 어떻게 대하고 생각하는지가 담겨 있다.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며, 하청업체를 그룹의 이해와 관련이 있다고 존중하는 식이다.

최 회장이 임직원에게 디자인을 강조하는 건 회사의 미래가 임직원의 창의적인 활동의 결과물이 모여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래서 다른 그룹과 달리 SK에선 총수의 지시가 확연히 적다는 건 다른 그룹 임직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직원들이 조직을 함께하는 구성원이기에 지시보다는 학습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일이 터지면 삼성은 TF를 만들고, 현대는 현장으로 가고, SK는 회의를 연다”는 재계 농담이 나온 배경이다.
최 회장의 발언엔 항상 ‘행복’도 등장한다. 구성원이나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경영의 최우선 방향으로 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회장 취임 이후 25년간 매년 신년회 등에서 직원들의 행복을 거론하고 있다. 2019년엔 아예 ‘이해관계자와 구성원의 행복’을 경영화두로 제시하고 100회의 행복토크를 열기도 했다. 이런 방침은 그룹 경영시스템에도 들어가 기업의 목적이 ‘행복 증진’으로 돼 있다. 2019년 행복토크에선 “기업의 존재 이유를 ‘돈 버는 것’에서 ‘구성원 전체의 행복 추구’로 바꿔나갈 것이다. 전체 구성원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함께 일해보자는 것이다. 함께 행복을 추구하면 그 크기는 더 커질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선언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막내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끔 ‘번개(즉석모임)’를 하는데, 직원들의 신청이 많고 격의없이 진행된다. 과거 인스타그램에서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변할만큼 소탈한 성격이다.

“경쟁자는 TSMC나 CATL 아닌 기후변화”
구성원이나 이해관계자 고객의 행복을 강조하는 최 회장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도사가 된 건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최 회장은 ESG가 대세가 되기 전부터 사회적기업이란 단어를 쓰며 기업의 사회공헌을 강조했다. 비인기 스포츠인 핸드볼 전용 경기장에 434억원을 지원하고, 실업팀(SK호크스·남자, SK슈가글라이더·여자)을 만든 것도 그 일환이다. 펜싱 수영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을 후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단은 거꾸로 정리했다.
최 회장의 철학은 SK의 미래 핵심사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수소에너지, 소형모듈원전(SMR), 탄소포집, 자원 재활용 등 그린을 미래 먹거리로 선점하고, 대체고기 기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는 진심으로 좋아하다 보니 이익과 사회공헌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게 된 경우다.
재계 맏형으로 사업보국(事業報國) 강조
38세에 재계 막내로 데뷔한 최 회장은 25년이 지나면서 이제 재계 맏형이 됐다. 재계 막내일 땐 외환위기 속에서 그룹의 생존을 걱정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2021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된 자리에선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했고, 그해 상공의날 기념식에선 “사업보국을 기업가정신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