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벨기에서 70년만에 다시 열린 장례식…"한국전쟁, 잊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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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군 첫 전사자 추모패 제막…군용차 필두로 학생·주민들 참여 '장례 행렬'
'軍 서열 2위' 국방 부총장 "나도 참전용사 후손"…현지 언론들도 열띤 취재
지난 26일(현지시간) 오후 벨기에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레더 시청 광장.
태극기와 벨기에 국기를 단 소형 군용 무개차를 행렬의 필두로 어린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주민 수백 명이 좁은 골목을 따라 행진에 나섰다.
한국전쟁 참전 벨기에군의 첫 전사자이자 이 지역 출신인 고(故) 프란스 로티르스를 추모하기 위한 장례 행렬이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행렬이 공동묘지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학생들은 저마다 흰장미 한 송이씩을 들고 추모에 동참했다.
22세 청년 로티르스는 한국전쟁 참전 두 달여만인 1951년 3월 24일 경기도 의정부 전선에서 전사했다.
이듬해 본국으로 송환된 유해는 처음엔 이곳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시 당국의 관리 소홀과 유가족이 없던 고인의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묘지도, 추모비도 사라졌다.
유해 안장 위치도 알 수 없다.
당국이 당시 과오를 바로잡고자 '영구 추모패'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70여년 만에 장례식이 다시 열린 셈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단순한 공공기관 행사라기보다는 마을 전체가 거행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현장에서 만난 주최 측 관계자는 "벨기에도 지리적으로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고통받은 역사가 있기에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하지만 한국전쟁이 2차 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발생해 벨기에에서는 '잊힌 전쟁'으로 불리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벨기에에 TV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로티르스의 3월 전사 소식이 4월 초에야 현지 신문에 처음 게재됐을 정도로 이곳 상황도 열악했다"고 덧붙였다.
당국이 직접 행사를 주관한 건 더 늦기 전에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힘을 얻으면서다.
여기에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유럽 각국에 안보 위기감이 엄습하면서 '참전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다시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현장에도 벨기에 현지 매체 취재진이 몰려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참석자 면면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국 합참차장 격인 마르크 티스 벨기에 국방 부총장(중장)은 연합뉴스에 "벨기에 국방부를 대표해 참석했지만, 별세하신 내 부친도 한국전 참전용사"라며 '특별한 인연'을 전했다.
그는 올해 참전용사 후손 자격으로 국가보훈처 주관 재방한 행사에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에 살지만 이날 행사를 위해 장거리 이동을 마다하지 않은 참전용사 후손들도 적지 않았다.
2017년 별세한 참전용사 콘스탄트 판파리스 씨의 딸 티나(67) 씨는 "생전에 아버지는 참전 수십 년이 지나서도 그때의 트라우마로 악몽을 꾸곤 하셨다"며 "참전용사 모두가 전쟁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서 왔다"고 전했다.
로티르스의 사촌 니콜(78) 씨는 제막식에서 "이제라도 고인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던 헌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노력해준 당국에 감사하다"며 "오늘 자리는 로티르스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모든 희생자를 위한 것"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연합뉴스
'軍 서열 2위' 국방 부총장 "나도 참전용사 후손"…현지 언론들도 열띤 취재
지난 26일(현지시간) 오후 벨기에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레더 시청 광장.
태극기와 벨기에 국기를 단 소형 군용 무개차를 행렬의 필두로 어린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주민 수백 명이 좁은 골목을 따라 행진에 나섰다.
한국전쟁 참전 벨기에군의 첫 전사자이자 이 지역 출신인 고(故) 프란스 로티르스를 추모하기 위한 장례 행렬이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행렬이 공동묘지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학생들은 저마다 흰장미 한 송이씩을 들고 추모에 동참했다.
22세 청년 로티르스는 한국전쟁 참전 두 달여만인 1951년 3월 24일 경기도 의정부 전선에서 전사했다.
이듬해 본국으로 송환된 유해는 처음엔 이곳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시 당국의 관리 소홀과 유가족이 없던 고인의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묘지도, 추모비도 사라졌다.
유해 안장 위치도 알 수 없다.
당국이 당시 과오를 바로잡고자 '영구 추모패'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70여년 만에 장례식이 다시 열린 셈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단순한 공공기관 행사라기보다는 마을 전체가 거행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현장에서 만난 주최 측 관계자는 "벨기에도 지리적으로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고통받은 역사가 있기에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하지만 한국전쟁이 2차 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발생해 벨기에에서는 '잊힌 전쟁'으로 불리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벨기에에 TV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로티르스의 3월 전사 소식이 4월 초에야 현지 신문에 처음 게재됐을 정도로 이곳 상황도 열악했다"고 덧붙였다.
당국이 직접 행사를 주관한 건 더 늦기 전에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힘을 얻으면서다.
여기에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유럽 각국에 안보 위기감이 엄습하면서 '참전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다시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현장에도 벨기에 현지 매체 취재진이 몰려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참석자 면면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국 합참차장 격인 마르크 티스 벨기에 국방 부총장(중장)은 연합뉴스에 "벨기에 국방부를 대표해 참석했지만, 별세하신 내 부친도 한국전 참전용사"라며 '특별한 인연'을 전했다.
그는 올해 참전용사 후손 자격으로 국가보훈처 주관 재방한 행사에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에 살지만 이날 행사를 위해 장거리 이동을 마다하지 않은 참전용사 후손들도 적지 않았다.
2017년 별세한 참전용사 콘스탄트 판파리스 씨의 딸 티나(67) 씨는 "생전에 아버지는 참전 수십 년이 지나서도 그때의 트라우마로 악몽을 꾸곤 하셨다"며 "참전용사 모두가 전쟁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서 왔다"고 전했다.
로티르스의 사촌 니콜(78) 씨는 제막식에서 "이제라도 고인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던 헌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노력해준 당국에 감사하다"며 "오늘 자리는 로티르스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모든 희생자를 위한 것"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