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수 실패후 마음의 병…'5년째 은둔'하는 32살 청년
명문대 가길 원하는 부모님의 압박에 마음 닫아
모든 것 포기한채 방안에서 컴퓨터만 하면서 지내
매일 꾸준히 운동 ... 또래 모임 만들면서 사회나갈 준비중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걸까. 생애주기별 ‘숙제’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청년들. 대입, 취업, 연애, 결혼까지.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낙오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 어디서도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최근 서울 성북구 생명의전화 청년이음센터에서 만난 정하늘 씨(가명·32)는 매주 또래 청년 16명과 함께 ‘습관’ 모임을 운영한다. 모임 참여자들은 사소한 자기만의 습관(루틴)을 설정한 다음 습관 실천 여부를 서로 점검한다.

정씨는 지금은 모임을 주도하고 구성원을 독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그는 방 안에서 무기력하게 생활했다. 먹을 음식이 없어 편의점에 갈 때 빼곤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은둔 생활’을 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에서 홀로 고민한 시간만 어언 5년. 정씨는 긴 터널 같은 시절을 지나 자기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 중이다.
뭐든 혼자서는 힘든 법이다. 정씨는 ‘매일 헬스장에 가서 30분씩 운동하기’와 같은 습관을 지키는 데서 자신의 일상을 바꿔보기로 했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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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32세 취업준비생 정하늘입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법도 몰라 20대 때 약 5년간 방에서 홀로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일을 연결하고 찾아 나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은 서울시 성북구 청년이음센터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다양한 배경의 청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보고 있습니다.”

▷성장 과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태어난 건 서울 인사동이었고 유년기엔 전남 순천이랑 경주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유학하러 가시면서 초등학교 1~4학년을 해외에서 지냈어요. 같은 동양 국가이긴 했지만 문화·정서적으로 꽤 다르다 보니까 소극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중학생 땐 양천구, 고등학생 땐 성북구에서 살았는데 이사 과정에서 친구들이 매번 바뀌니까 소위 고향 친구들을 만들지 못했죠. 어딜 가나 늘 소외감을 느끼면서 지냈습니다.”

▷방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는 대입 실패였죠. 일본에서 박사 공부까지 한 고학력자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어요. 집안 분위기상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나와야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었는데 꾸역꾸역 공부해도 번번이 떨어졌어요. 부모님께서 제게 요구하는 바는 명확했어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 하나는 무조건 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기 위해선 비전을 갖는 게 중요한데 비전보단 늘 목표를 강요받아온 것 같아요.”

▷대학 진학 결과는 어땠나요.
“삼수했는데도 목표로 한 명문대에 합격하지 못해서 2012년 무렵 군에 입대했습니다. 제대하고 돌아왔는데 눈앞이 캄캄했어요. 매일 수능 교재를 펴놓고 강의를 보면서 필기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4수를 했습니다. 공부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더라고요. 또다시 낙방했고 어느 순간부턴 모든 걸 포기한 채로 방에서 컴퓨터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은둔 생활은 얼마나 지속하셨나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약 5년간 방에서만 지냈습니다. 집에 먹을 음식이 다 떨어져 편의점에 갈 때 말곤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얼굴은 1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했고요.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러 나갈 때만 부모님을 마주치는 정도였으니까요.”

▷사회 활동이 특별히 더 어렵다고 느낀 이유가 있었나요.
“같은 세대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어요. 가방끈이 짧은 내가 대학에서 전공 서적을 읽는 아이들과 말을 섞을 수 있을까? 내가 그들보다 못났다는 게 바로 티 날 텐데? 무의식중에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나서 동창들이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해도 일부러 피한 적이 많아요.”

▷최근엔 여러 사람 사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요. 어떻게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됐나요.
“방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내도 생활비는 들어요. 아버지께서 은퇴하시고 동생도 그 무렵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다고 선언하면서 밥벌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습니다. 2019년에 각종 국가 지원 사업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청년수당을 매달 50만원씩 6개월 동안 받았고, 청년반상회와 청년 공간 ‘무중력지대’ 등 관계망 형성 사업에 참여했어요. 그런 대외활동에 발을 들이며 취업 준비하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모두가 다 갖고 있구나, 다들 하는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배웠어요.”

▷집 밖으로 나온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지금도 상황이 100%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일은 버겁기만 해요. 누군가 제게 손을 내밀면 저도 ‘짝’ 하고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대학에 갔다면 그런 훈련을 더 해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학창 시절 때 사귄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데 그때 친구를 많이 못 만든 사람들은 그러면 기회가 더 없는 건지 궁금했어요. 학교를 떠난 저 같은 사람들도 누군가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했으면 했거든요. 지속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더 많았으면 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모순적이지만 대인 관계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울타리를 늘 갈망해왔어요. 여태껏 그런 공동체를 만나지 못해 방에서 홀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던 게 아닌가 싶거든요. 저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소속감을 잃은 친구들이 지속성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지지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관계들을 유지해나가려면 그만큼 더 역량을 길러야겠죠.”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