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영감 받은 정원 출품, 세번째 금상…"한국 정원 자리매김 기대"
"찰스 3세 방문, 정원 사랑하는 분…한국 사람이라 가진 다름 가치"
[인터뷰] 첼시 플라워쇼 금상 황지해 "한국 산의 가치 인정받아"
"지리산 등 우리나라 산의 가치가 인정받은 것이며, 영국에서 한국 정원이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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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표 정원·원예 박람회인 첼시 플라워쇼에서 지리산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으로 금상을 받은 황지해 작가는 23일(현지시간) 이번 수상의 의미에 관해 이처럼 설명했다.

황 작가는 이날 수상 후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산과 잡초의 잠재된 가치, 자연의 원시성이 인정받은 것이고 나는 전달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리산 산약초는 약효가 탁월한 가치가 있고, 이는 한국 산의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 낸 마법"이라며 "이를 보여주면서 자연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첼시 플라워쇼 금상 황지해 "한국 산의 가치 인정받아"
황 작가는 첼시 플라워쇼 주요 경쟁부문인 '쇼 가든'에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를 출품했다.

'쇼 가든'에선 12개 팀 중 황 작가 등 5개 팀이 금상을 받았다.

황 작가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모티브로 설계한 정원으로 출전했다.

지리산에만 있는 지리바꽃,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을 비롯한 토종 식물 등 식물 300여종과 총 200t 무게의 바위들로 가로 10m, 세로 20m 크기 땅에 지리산의 야성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바위 사이엔 지리산 젖줄을 표현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중심엔 지리산 약초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 탑이 서 있다.

황 작가는 첼시 플라워쇼에 11년 만에 복귀했으며, 금상 수상은 세 번째다.

그는 2012년 첼시 플라워쇼에서 'DMZ:금지된 정원'으로 쇼 가든 부문 전체 최고상(회장상)과 금상을 동시에 받으며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1년에는 전통 화장실을 정원으로 승화한 '해우소'로 처음 출품해서 규모가 작은 아티즈 가든 부문에서 금상과 최고상을 받았다.

[인터뷰] 첼시 플라워쇼 금상 황지해 "한국 산의 가치 인정받아"
그는 "건강 사정상 긴 시간 복귀를 꿈만 꾸고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와 한국 정원을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아서 기쁘다"며 "첼시 플라워쇼를 주최하는 왕립원예협회(RHS) 회장 등 사람들이 음악을 기억하듯 DMZ 정원을 떠올려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엔 영국에서 한국 정원이 뭔지를 몰랐다"며 "해우소와 DMZ에 이어 지리산까지 수상하며 이제 한국 정원이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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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작가는 "한국인으로서 익숙한 재료와 편안한 연출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이들에겐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며 "내가 천재적인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서 가진 다름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주변이 다 산천초목이지만 이들은 다듬어진 자연에서 살았기 때문에 원시성에 관해 결핍이 있다"며 "식물은 인간의 손길을 원치 않고 원래 상태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엔 한국 정원이 좋다"고 말했다.

황 작가의 정원은 22일 개막일에 찰스 3세 국왕이 크게 감탄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찰스 3세는 예정과 달리 정원 안까지 둘러보고 마지막엔 황 작가의 요청에 꼭 안아주기도 했다.

그는 "약초 건조장에 있고 같이 식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찰스 3세가 정원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라 언어가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정원을 방문한 다른 유명인과 정원 전문가들은 황 작가의 정원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다른 정원들과 다르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는 "DMZ로 수상한 뒤 자연주의 정원으로 흐름이 바뀌는 계기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앞으로 원시 정원의 가치가 더 조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첼시 플라워쇼 금상 황지해 "한국 산의 가치 인정받아"
그는 "아침에 정원 앞에서 상을 받으면서 '완벽한 우리 팀'이라고 소감을 밝혔다"며 "30년 전부터 한국 식물의 씨앗을 채종해 웨일스 농장에서 키워온 블레딘 부부와 젊은 시공팀 등 모두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정원을 설치하는 과정에 날씨가 궂어서 애로가 많았다"며 "비가 많이 와서 바위를 실은 차가 주변을 5시간 빙빙 돌았고 미끄러워서 두 번이나 떨어뜨렸다.

심사 때는 노각나무에 꽃이 안 피어서 애가 탔다"고 말했다.

전날 만난 황 작가는 공식 행사를 위해 단장하고 있었지만, 손끝은 까맣게 물들었고 손가락에 밴드를 여러 개 붙이고 있었다.

그는 "작은 식물들을 일일이 설치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1976년 전남 곡성 출신으로,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환경 미술 현장에서 일하다가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터뷰] 첼시 플라워쇼 금상 황지해 "한국 산의 가치 인정받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