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에너지 특별법 법사위 통과, 발전소 소재지역 전기요금 인하 기대
수도권 등은 요금 인상 우려…지역 내 역차별,지방 중복지원 등 여론도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 추진…"합리적"vs"신중해야" 반응 엇갈려
"모두가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울산에는 여러 개 있는 데도, 전기요금 혜택이 전혀 없다.

"
지난 2월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이하 차등요금제)'를 공론화했다.

환경오염이나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원전을 끼고 있는 만큼, 시민들이 전기를 저렴하게 사용하도록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울산에서 큰 호응이 이어졌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로 급부상하게 됐다.

차등요금제 근거를 담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이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 법안은 전기 판매자가 발전소 유무와 송배전 비용 등에 따라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전국 자치단체들은 기대감을 품거나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등 저마다 유불리를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 "우리가 생산한 전기, 왜 수도권에"…차등요금 도입 추진
분산에너지 특별법은 중앙집중형인 우리나라 전력 체계를 지역으로 분산하는 법안이다.

지금은 전기를 생산한 지역에서 원거리 송전망을 통해 공급하는 구조라서 전력 손실 비용이 2021년 기준 2조7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하다.

특히 발전소를 보유한 지역에서는 공해나 위험 등 사회적 비용이 반영되지 않았고, 발전소가 없는 곳과 전기요금이 똑같아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원전을 끼고 있는 모든 지역에서 전력 소비량(판매량)보다 발전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은 발전량이 4만6천579GWh(기가와트시)이지만, 소비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2만1천494GWh에 그쳤다.

울산(새울), 경북(월성·한울), 전남(한빛) 등 원전 소재 지역도 발전량이 소비량을 초과했다.

전국 화력발전소(58개)의 절반인 29개가 있는 충남지역 발전량은 10만7천812GWh로, 소비량(5만260GWh)의 2배를 훌쩍 넘을 뿐 아니라 국내 총발전량(59만4천392GWh)의 18%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에 서울은 발전량이 부산의 9% 수준인 4천337GWh에 그치고, 소비량은 발전량의 10배가 넘는 4만8천789GWh에 달했다.

경기도 역시 발전량보다 소비량이 훌쩍 높은 수준이었고, 그나마 발전소가 있는 인천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발전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수도권에서 주로 소비하면서 요금은 똑같이 책정하는 '구조적 모순'을 바로 잡자는 취지가 차등요금제에 담겼다.

실제로 미국은 원전 등 발전소 밀집 지역 인근에 전기를 더 싸게 제공하는 지역별 한계가격(LMP)을 적용하고 있다.

영국, 일본, 호주 등에서도 송전 거리가 멀수록 높은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거리정산 요금제'를 적용하는 등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차등요금제를 도입한 상태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 추진…"합리적"vs"신중해야" 반응 엇갈려
◇ 기업 유치·이전, 지역민 요금 혜택…균형발전 효과 기대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발전소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22일 "울산의 전기료가 저렴해지면 반도체나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기업 유치, 수도권 기업의 지역 이전 등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기존 지역 기업들도 생산원가를 절감해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울산시는 신규 새울원전 가동 시 추가 발전량 도출, 요금 할인과 감면 방안 마련 등을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전력 자립도(발전량에서 소비량을 나눈 값)가 184%에 달하는 전남도는 차등요금제가 도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법안 통과를 반기는 분위기다.

전남도 관계자는 "다만 육지에서 거리가 먼 도서 지역은 요금을 어떻게 적용할지 등 법 시행 이전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전기법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천도 차등요금제 도입을 반기고 있다.

인천은 17개 시도 중 전력 자립도가 243%로 가장 높다.

인천에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 대부분이 서울과 경기도로 공급돼, 인천 주민이 쓰는 에너지가 극히 적다는 인식이 많았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에서 쓰는 에너지는 40%에 불과하고, 60%가량이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공급된다"며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만큼 이번 요금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국 최대 석탄화력발전소 집적지인 충남 역시 차등요금제 도입을 환영하면서, 법안 제정을 계기로 국내 전력시스템이 중앙집중형과 분산전원형을 혼합하는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산업용 전기료를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논의가 지역에서 활발하다"며 "경남은 전력 소비량보다 발전량이 많아 차등요금제가 기업 투자유치 등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발전소 지역 중복 지원, 지역 내 역차별 우려…신중론도 비등
발전소가 없어 전력 소비량이 발전량보다 많은 지역에서는 전기요금 부담이 커질까 봐 경계하고 있다.

발전소 건설과 운영으로 해당 지역들이 막대한 지원금을 받는 데도 요금 혜택까지 부여하는 것은 중복 지원이라는 반론도 있다.

특히 광역단체 차원에서는 지역 안에서도 발전소 유무에 따라 요금 차이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지 등 유불리를 분석하고 있다.

강원도는 시행령과 규칙 마련 등 후속 절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발전소가 밀집한 영동 지역에 호재가 기대되는 반면 발전시설이 부족한 영서 지역은 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역차별' 우려가 동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전시설이 많은 영동과 자체 전력 생산능력이 부족한 영서의 사정이 다르다.

영동의 경우 강릉, 동해, 삼척 등에 대형 화력발전소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반면 영서는 춘천LNG발전소와 소양강댐, 영월화력발전소 등 발전시설 6곳 전력 생산량을 모두 합해도 영동지역 화력발전소 한 곳의 생산량에도 못 미친다.

강원도는 영동과 영서 상황이 틀린 만큼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준을 광역으로 묶는 등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기도는 시행령 마련 등 후속 조치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다만 과거에는 "차등요금제 도입이 요금 인상 요인이 돼 입법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특히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와 사용하는 수도권이 송전 비용은 높을 수 있지만, 전기를 나누는 배전 비용은 낮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기요금 인상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전북은 법안 통과가 특별히 유리한 것도, 불리한 것도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군산 새만금 지역을 중심으로 육상태양광 시설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군산을 중심으로 수혜를 볼 가능성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충북도는 법안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을 정책 과제로 설정,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차등요금제는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며 "오는 7월 연구 결과가 나오면 대응 전략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연 김동민 백도인 최은지 최찬흥 형민우 이상학 노승혁 김형우 허광무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