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창곡 62곡으로 이야기 전개…"장애물 뚫고 나가는 긍정 에너지 담겨"
6월 8∼11일 국립극장서 공연…김준수·유태평양·민은경 등 출연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대자본과 젊은 소상인들의 대결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이 창극으로 재탄생한다.

국립창극단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제작발표회를 열고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컸던 16세기 유럽에서 쓰인 원작을 현대의 감수성에 맞게 탈바꿈해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성열 연출은 "몇백년 전 작품이다 보니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의아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며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종교나 인종적인 편견을 과감하게 탈색시키고,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서사를 변형시켜 넣었다"고 말했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원작에서 천대받던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 샤일록을 베니스 무역을 주도하는 대자본가로, 낭만적인 무역 상인 안토니오를 베니스의 소규모 상인들이 모인 조합의 우두머리로 설정했다.

극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대규모 무역 상사 회장인 샤일록과 소규모 상인 조합 간의 대결 구도가 원작과 가장 크게 바뀐 각색 포인트"라고 짚었다.

이 연출은 샤일록과 안토니오에 대해 "샤일록은 3대에 걸쳐 부를 물려받은 인물로 기득권을 계속 발전시키고 확장하려고 한다.

악인이라기보다는 자본가로서 철저하게 충실하다"며 "반면 안토니오는 '흙수저'로 시작해 사람들을 모아서 기득권을 무너뜨리려는 민중이자 시민이다.

이 두 세계가 부딪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샤일록의 대사 중에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 했던 세상이 실현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반면 안토니오는 '끝끝내 굴하지 않고 일어나겠다'고 하는 대사처럼 오뚝이처럼 계속 시련을 이겨낸다"고 덧붙였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대자본과 젊은 소상인들의 대결
샤일록과 안토니오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스타인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맡았다.

이 연출은 샤일록은 뱀 같이 간교하고 독한 이미지, 안토니오는 바위처럼 든든하고 강직한 이미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극의 주된 이야기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지만, 여자 주인공 포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도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환상의 섬 벨몬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포샤와 안토니오의 의형제 바사니오의 사랑 이야기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대립과는 상반된 분위기로 극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한다.

포샤는 민은경, 바사니오는 김수인이 맡았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대자본과 젊은 소상인들의 대결
제목을 원작의 '상인'에서 '상인들'로 바꾼 것도 눈에 띈다.

이는 공동체적 연대를 부각한 것으로 안토니오를 중심으로 젊은 상인들이 진취적으로 살아 나가는 모습을 반영했다.

이 연출은 "작품이 주는 웃음에는 희망이 있다"며 "우리를 가로막는 벽이나 장애물을 젊은이들의 사랑과 패기, 시민들과의 연대와 협업으로 뚫고 지나가는 긍정 에너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역대 창극단 작품 중 가장 많은 62개 곡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62곡 모두 전통 소리를 우리의 장단과 음계를 이용해 만든 작창곡이란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보통 창극에서 작창곡은 전체 곡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번에는 100%를 채웠다.

창 창작에는 소리꾼 한승석과 지난해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비 작창가 2명이 보조로 참여했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대자본과 젊은 소상인들의 대결
극의 전체 작곡을 담당한 원일은 "작창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작품으로 내가 직접 작곡한 곡은 단 한 곡도 없다"며 "이는 이탈리아 배경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판소리의 원형적인 힘으로 전부 끌고 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역할은 이 작창곡들을 어떤 프레임을 씌워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며 "록, 팝,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를 캐릭터에 맞게 녹였고, 창극에서는 이례적으로 전자 음악적인 요소도 사용했다"고 말했다.

샤일록 역의 김준수는 "작창곡은 노래지만 말맛을 살리는 대사 어법으로 짜여있다.

이걸 살려서 연기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은 다음 달 8∼11일 국립극장의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외국인 관객들을 위한 자막도 제공될 예정이다.

티켓은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대자본과 젊은 소상인들의 대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