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5·18 때 20여곳에서 50회이상 시민 상대 발포"(종합)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 "앉아쏴, 서서쏴 사격…135명 사망·300여명 부상"
발포 관련 중요인물 70여명 조사…"전두환에게 발포 책임"
[고침] 사회("계엄군, 5·18 때 20여곳에서 50회이상 시민…)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최소 20곳 이상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발포한 사실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조사위는 16일 종로구 사무실에서 연 대국민보고회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계엄군 진압 작전을 재구성하고 총상에 의한 사망자·부상자를 지도상에 표기해 분석한 결과라며 이렇게 밝혔다.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구체적인 총격 횟수가 권위 있는 조사를 거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3년간 진행된 조사에서는 계엄군이 시민을 상대로 공격용 헬기 사격을 가한 정황, 희생자들의 시체가 조직적으로 은폐된 정황 등도 파악됐다.

조사위는 연말까지 추가 조사를 거쳐 내년 6월 공식 보고서를 발간한다.

◇ 계엄군 발포 현장의 재구성…공수부대 '앉아쏴' '서서쏴' 자세로 사격
조사위에 따르면 계엄군의 첫 발포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 50분께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시작됐다.

이어 20일 오후 11시께 광주역 인근에서 발포가 이뤄졌고, 21일에는 11공수여단과 7공수여단이 배치된 전남도청 일원뿐 아니라 3공수여단이 배치된 전남대 일원에서도 총격이 있었다.

병원 진료 기록과 보상심의서류를 분석한 결과, 총상에 의한 사망자는 총 135명이고 총상에 의한 부상자는 최소 300명이 넘었다.

특히 많은 피해자가 머리와 가슴 등 치명적 부위에 총격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위는 "5월 21일 오후 1시께 시위대의 화염병 투척 및 장갑차 돌진 후 이뤄진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전에 이미 일부 병력에 실탄이 분배되었다는 사실을 현장에 있던 계엄군의 진술과 현장 사진 등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장갑차 기관총 사수로부터 장갑차 기관총에도 하루 전인 5월 20일부터 실탄이 장착돼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대대장의 체험수기와 1995년 검찰 진술, 그리고 현장 취재기자들의 증언을 통해 도청 앞 집단 발포 상황에서 공수부대가 흩어져 횡대로 '앉아 쏴'와 '서서 쏴' 자세로 동시에 여러 곳에서 사격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발적인 총격이 아닌 의도적인 발포였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조사위는 그러면서 "5월 20일 광주역 발포, 5월 21일 도청 앞 발포에 따른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엄군 현장 지휘관은 물론 계엄사령부도 발포 현장을 엄격히 통제하지 않았다"며 "그에 따라 총상 피해자는 더욱 늘어났다"고 언급, 계엄사령부의 책임을 명확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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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책임소재 규명 중…헬기 사격 '플랜B' 있었나
조사위는 또 발포 지휘계통과 연관된 중요인물 70여 명을 조사한 결과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발포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첨단 조사기법을 동원해 책임 소재를 명료하게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박모 씨는 "발포 명령은 문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발포는 보안사 계통에서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또 육군본부 보안부대장 김모 대령은 "10·26 후 이희성은 실권이 없는 사람이었고, 참모차장 황영시가 광주 진압작전의 실질적 사령관이었는데 황영시를 움직인 사람은 전두환 사령관"이라고 조사위에 밝혔다.

아울러 코브라 공격헬기에서 20㎜ 벌컨 연습탄 사격이 이뤄진 정황이 발견됐다.

조사위는 헬기 사격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 조선대 절토지에 대해 지난해 3월 현장조사를 실시해 20㎜ 벌컨 연습탄두 1개를 발견했다.

벌컨포 특성상 단발 사격은 불가능해 주변을 여러 차례 추가 조사했지만, 탄두를 더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조사위는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을 위한 상무충정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이에 대비한 2차 작전으로 광주비행장에 무장헬기를 대기시키고, 공수부대 잔여 병력을 무장헬기에 탑승시켜 타격하기 위한 작전계획이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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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자 시체 어떻게 감췄나…여기저기 암매장한 듯
조사위가 제보를 받아 확인 중인 시신 암매장 추정지는 53개소에 달한다.

이 가운데 광주교도소에 암매장됐던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 시체가 31사단 영내로 옮겨졌다가 처리됐다는 당시 계엄군 병사들의 증언이 확보돼 진위를 조사 중이다.

1980년 5월 24일 3공수여단으로부터 광주교도소 일원 작전지역을 인계받은 20사단 병사 2명은 당시 현장에서 민간인 시체 여러 구를 수습해 트럭에 실어 옮겼다고 진술했다.

또 31사단 병사 4명은 영내에 있던 민간인 시체 10여 구를 트럭에 실어 31사단 유격장으로 옮겼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옛 광주교도소에서 무더기로 발굴된 유골 중에서 5·18 행방불명자 염경선(당시 23세) 씨로 추정된 유골의 신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조사위는 최근 전남 해남군 백야리 예비군 훈련장에서 여러 구의 신원 미상 유골을 발견했으며, 5·18 희생자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 중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43년이 지난 지금도 몸 안에 박힌 총탄을 제거하지 못한 채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다수 있었다.

후유증 피해자들을 분석한 결과, 5월 18일 부상자 442명 중 44명(10%), 19일 부상자 431명 중 58명(13%), 20일 부상자 308명 중 59명(19%), 21일 부상자 346명 중 108명(31%)이 장애 9등급 이상의 중증 장애를 얻었다.

5월 18일 이후 날짜가 지날수록 시위 진압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모한 것이다.

행방불명자들의 생사와 살아있다면 현재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밝혀내야 할 과제다.

조사위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행방불명된 것으로 의심되는 아동·청소년이 최대 6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위 허연식 과장은 당시 7살이던 이창현 군 등의 행방에 대해 "그동안은 행불자에 대해 암매장 관련 조사에 집중했는데, 실종됐거나 해외로 입양됐을 가능성 등으로 넓혀서 조사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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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위 연말 종료…내년에 보고서 발간
조사위는 2018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2019년 12월 26일 시행됨에 따라 만들어졌다.

조사위는 오는 12월 26일 조사를 종료하고 내년 6월 종합보고서를 채택해 대정부 권고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날 대국민 보고회는 사실상 그동안의 조사를 집대성하는 마지막 보고 자리다.

조사위는 특별법 제3조에서 정한 11개 법정조사 범위에 따라 총 21개의 직권조사 과제를 수행했으며, 피해자 신청에 의한 216건의 신청사건도 조사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