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질문 세 가지.

Q1. 정조를 시해하기 위해 자객이 궁에 들어왔다?
Q2.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승인 하에 정조암살이 계획되었다?
Q3. 현빈(정조 역할)과 같은 멋진 등 근육과 복근이 정조에게도 있었을까?

거꾸로 하나씩 짚어 보면, 정조는 활쏘기엔 탁월했지만 운동 부족이었다. 신하들의 걱정을 살 정도였다. 두번째, 집권 초 정조와 정순왕후가 반목했다는 근거는 없다.
첫 질문만이 역사적 사실이다. 1777년 여름, 정조를 시해하려는 정유역변이 있었다. 그럼, <역린>은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한 오락영화일까?

함께할 수 없는 자들은 제거되었다. 음습한 곳에서 원한과 앙심은 자라겠지만 왕국을 유산으로 받은 자라면 감내해야 한다. 국왕 정조는 계속 생각한다. 왕이 된 지금도 위협은 건재하다. 밟고 서 있는 지반은 터무니없이 약하고 여름밤 궁의 공기에는 불온함이 떠다닌다. 음모의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정조의 꿈 그리고 욕망
이른 아침, 궁의 옷을 관리하는 세답방에 왕의 옷이 높이 걸렸다. 왕의 흉배는 원형이고 신하의 흉배는 네모.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지다. 왕은 하늘이어야 한다. 궁녀들이 왕의 옷을 우러러 절을 했고 궁은 잠에서 깨어났다.

정조는 투철한 원칙과 실천을 강조했다. 푸시업을 하는 그의 등엔 땀방울이 송골히 맺혔고 근육은 결의를 보여준다. 밤엔 습관대로 처소에서 촛불을 밝히고 문서를 읽었다. 잠은 오지 않았고 내면의 어두움은 물러가지 않았다.

불안과 긴장이 왕을 구했다. 1777년 7월(정조 1년) 왕의 처소인 존현각 지붕위로 자객이 올라섰다. 정조가 이를 알아차렸고 침입자들은 깨진 기왓장과 흩뿌린 모래만 남긴 채 달아났다. 한 달 뒤 다시 궁에 잠입한 자들이 잡혔고 일의 전모는 밝혀진다. 왕의 최측근 홍국영을 노렸다는 첫 진술과 달리 실제 원했던 건 왕의 목이었다. 궁 안의 나인, 군인 여럿이 역모를 도왔고 정조의 불안은 근거가 없지 않았다.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성을 다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진다.’ 정조의 눈빛은 고요하고 대사는 담담하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정조가 꿈꾸는 조선은 이것이다. 사대부가 주도하는 정치가 아닌 왕이 주도하는 세계. 그에겐 환희의 언어였던 성리학의 질서가 회복된 세상. 하지만 선왕에게 물려받은 왕국은 혈맥이 막히고 기력이 다해 누워있는 환자와 다름없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용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백성들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솔직하게 털어놓는 정조의 꿈 그리고 욕망
<역린>에서 홍국영은 정조를 보호한다. 군의 실력자 훈련대장 구선복을 견제하는 것도, 자객을 대비하고 왕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정조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호소하고 있었다. 전하! 새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를 보는 국왕의 대답은 이것이다. 이 나라에 질서를 부여해 주게. 모든 건 관리되어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네. 정치는 백성을 위해 있지만 신하와 백성 모두 나를 따라야 해.
정조는 국영을 앞세웠고 그는 왕이 원하는 것을 실천에 옮긴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정조의 꿈 그리고 욕망
궁에 침입한 살수들은 제거되었고 정조는 뿌연 흙먼지에 둘러싸인 채 말을 몰아 달렸다. 붉은 깃발을 치켜든 호위대가 뒤를 따랐다. 일행이 멈춘 곳엔 고통 받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있었다. 정조는 갇혀 있던 그들을 구원하고는 백마 위 안장에서 자신이 다스릴 왕국, 대지와 굽이도는 물길, 울창한 숲, 맑고 푸른 하늘을 눈에 담았다. 날렵한 턱 선을 따라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흘러내렸다.

용의 턱 아래 거슬러 난 비늘, 역린. <역린>은 제왕이라는 정조의 정체성을 제법 잘 그려냈다.

<역린> 너머의 이야기.
정조가 놓친 세상이 있다. 장터로 모여든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에 매료됐다. 평등의식과 경제적 이윤추구, 개인의 욕망과 주체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정조에게 말했다. 전하! 조선은 낡았습니다. 갇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길을 내겠습니다.

바깥은 해상무역으로 부가 축적되고 전통이 아닌 근대를 향한 지식이 폭발하는 세상이었다. 조선은 평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서구 열강과 일본은 멀지 않은 바다에서 조선의 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몇 년 뒤 홍국영은 정조의 세계와 충돌한다. 결국 국정농단의 죄명으로 실각했고 강릉에서 서른셋의 나이에 쓸쓸히 죽었다. 구선복은 1789년 역적으로 처단된다. 정조는 정성을 다했지만 재능에 비하면 이룬 것은 초라했다.

정조의 통치 시기, 육로와 해로는 통제되어 여행자는 국경을 넘기 어려웠고 지적 자유는 허용되지 않아 학자들의 상상력은 형편없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자들은 주요 보직에 등용되지 못했다. 정조는 그렇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 속에 1800년 4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조선의 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