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달로 산업의 경계는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음악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공지능(AI)과 혼합현실(XR) 기술을 통해 아티스트들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고 있으며 아예 AI 기술에 팬덤까지 결합한 '버추얼 아이돌'도 등장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하이브 역시 음악과 기술의 융합을 중장기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발라드 가수 이현의 '미드닷' 데뷔는 음악 기술 융합을 시도한 하이브 'L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미드닷 데뷔를 통해 하이브가 그리는 음악과 기술 융합 미래를 살펴봤습니다.
가수 미드낫이 15일 서울 CGV 용산에서 열린 신곡 마스커레이드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이브 제공
가수 미드낫이 15일 서울 CGV 용산에서 열린 신곡 마스커레이드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이브 제공
하이브가 음악과 기술을 접목한 '프로젝트 L'로 알려진 미드낫(MIDNATT)의 데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아이돌 그룹 에이트로 활동했던 가수 이현이 미드낫으로 돌아온 것. 일부 팬들의 우려와 달리 인공지능(AI)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 아이돌'은 아녔다.

정통 발라드 가수였던 그는 15일 이색적인 신스웨이브 장르의 디지털 싱글 '마스커레이드'를 선보였다. 파격적인 변신 뒤엔 '기술'이 있었다. 그는 이날 서울 CGV 용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긴 공백기를 깨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자정'을 뜻하는 미드낫으로 팬들 앞에 섰다"며 "음악적 변화에 대해 간절함이 있었고 이를 기술의 도움을 받아 풀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스커레이드 음원은 세계 최초로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6개 언어로 동시 발매됐다. 인공지능(AI) 오디오 기업 수퍼톤의 다국어 발음교정 기술을 활용한 덕분이다. 또 여성 보이스를 디자인해 음원 중간에 삽입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는 리얼타임 콘텐츠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과 협업했다. 숲 장면을 제외한 전체 영상 구간이 시공간 등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의 스토리에 필요한 가상공간을 만들어주는 확장 현실(XR) 시스템에 기반해 제작됐다.

미드낫은 하이브가 음악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한 L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하이브는 팬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음악과 기술의 융합을 중장기 사업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기술 솔루션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하이브IM도 분사했다. 이번 미드낫 데뷔 프로젝트는 제작을 총괄한 하이브IM과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빅히트뮤직의 첫 협업 작품이다.

기술은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역할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와 정우용 하이브IM 대표는 이날 미드낫의 마스커레이드 발매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하이브가 그리는 음악·기술 융합의 비전을 밝혔다. 기술이 바꿀 음악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면서도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역할로서 기술을 한정하는 신중함을 드러냈다.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가 음악산업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는 음악과 콘텐츠에 담아내고자 한 메시지를 상상력의 한계 없이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지원(서포트)을 얻게 됐으며 이를 통해 팬들은 더욱 몰입감 있게 음악과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우용 하이브IM 대표는 "우리의 방향성은 아무리 새로운 기술과 트렌디한 사운드가 들어가도 아티스트 고유의 서사와 진정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아티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고 이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음악과 기술(의 융합)을 활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K팝 시장에서 부상한 '버추얼 아이돌' 같은 AI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정 대표는 "기술 중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아티스트가 발신하고 싶은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기술이 필요하다면 지원하는 사업을 준비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서는 미드낫에 대한 팬들의 피드백을 먼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15일 서울 CGV 용산에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우용 하이브IM 대표, 미드낫,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  /하이브 제공
15일 서울 CGV 용산에서 미드낫 마스커레이드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우용 하이브IM 대표, 미드낫,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 /하이브 제공

'30대 최민식' 만든 그 기술, 이번엔 외국어 발음 교정

미드낫이 세계 최초로 6개 언어 음원으로 동시 출시된 것은 수퍼톤의 다국어 발음교정 기술 덕분이다. 수퍼톤은 올해 1월 하이브가 인수한 기업으로,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의 주인공 최민식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수퍼톤은 아티스트가 외국어로 가창한 데이터에 원어민 내레이션 발음 데이터를 적용했다. 내레이션 음성 데이터에서 발음, 강세 등의 요소만 가져와 아티스트의 음색 및 음정 등 가창 스타일을 훼손하지 않고 외국어 발음만 자연스럽게 교정한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신 대표는 "다양한 언어권에서 몰입감 있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며 "이 기술을 통해 K팝 아티스트가 글로벌에서 활약하는 데 있어서 제약을 덜어주고 궁극적으로 K팝 장르가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원 중간에 삽입된 여성 목소리는 수퍼톤의 페이스2보이스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프로젝트의 사운드 및 컨셉에 어울리는 여성 음색을 제작하고 이를 미드낫이 직접 부른 구간에 합성해 새로운 보이스를 디자인했다. 미드낫은 "키를 높이지 않고도 여성 목소리로 변화한 것이 경이로웠다"며 "혼자서 듀엣곡을 부르는 등 재미있는 음악적 시도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적 상상력을 시각화⋅공간화한 뮤직비디오

혼합현실(XR) 시스템으로 제작해 수중 막에 갇혀있는 인물을 구현한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장면 / 유튜브 캡처화면
혼합현실(XR) 시스템으로 제작해 수중 막에 갇혀있는 인물을 구현한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 장면 / 유튜브 캡처화면
하이브IM은 자이언트스텝과의 협업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국내 최초로 크로마와 LED 기반 XR 시스템을 동시에 활용해 자연스러운 가상화면을 연출했다. XR은 360도 영상을 바탕으로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VR과 실제 사물 위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AR을 아우르는 기술이다. 공간, 시간, 계절, 날씨 등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 스토리에 필요한 최적화된 가상 공간을 만들어줬다는 평가다.

XR 시스템이 합성된 가상 화면을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에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프리비주얼 기술을 도입해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한층 높였다. 정 대표는 "하이브는 팬들의 음악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음악과 기술 융합을 오래전부터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여러 기술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