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을 찬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대 최고의 Fed 의장' 폴 볼커의 회고록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한경DB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한경DB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늦은 저녁. 미국 중앙은행(Fed)이 급히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미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백악관에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워싱턴 거리에는 교황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인파가 가득했다.

집에 있다가 혹은 교황을 취재하다가 Fed로 달려온 기자들은 "Fed 의장이 사퇴하는 것이냐", 심지어는 "의장이 사망한 것이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Fed 의장은 기준금리를 15.5%로 단번에 4%포인트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순간 미국, 나아가 전 세계 돈의 질서가 뒤바뀌었다.

훗날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불린 이 사건의 주동자는 당시 Fed 의장이던 폴 볼커(1927~2019). 그는 1979년부터 1987년까지 Fed 의장을 맡았다. 그를 둘러싼 일화는 마피아 두목을 연상시킨다. 2m가 넘는 키에 입에는 항상 싸구려 시가를 물고 다녔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실업률이 치솟자 그는 살해위협에 시달렸다. 볼커는 출퇴근길에 권총을 지니고 다녔고, 이듬해 Fed는 볼커에게 특별 경호 프로그램에 동의하라고 요구했다. 오늘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걸 두고 '자이언트스텝'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볼커는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책마을]
전설적인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 볼커의 회고록 <미스터 체어맨>이 드디어 국내 출간됐다. '드디어'라고 한 건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국내 금융 및 경제정책 분야 전문가들이 원서를 구해 읽을 정도로 화제가 됐던 책이기 때문이다.

원서 제목은 'Keeping at it'.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이 여러 차례 "끝났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을 계속할 것(we will keep at it)"이라는 식으로 제목을 인용해 시장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볼커와 크리스틴 하퍼 '블룸버그마켓' 편집장이 함께 썼다.

그는 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인플레이션과 싸웠을까. 금본위제를 폐지시켜 달러를 회수하지 못하게 된 '닉슨쇼크', 베트남전에 돈을 쏟아붓느라 달러를 찍어낸 휴우증, 여기에 오일쇼크까지…. 그가 의장이 된 1979년, 달러의 가치는 형편 없었다.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불안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위협했다.

달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곧 미국 경제를, 국가의 위상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그가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회수한 덕에 달러는 휴지조각 신세를 면했다. 볼커가 앞서 경력 초기 경험 일부를 기록한 책을 내면서 제목을 <달러의 부활>이라 단 이유다. (이 책은 2020년 국내 출간됐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책마을]
볼커는 책에 이렇게 썼다. "당시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물가안정이 Fed의(내 판단으로는 모든 중앙은행의) 궁극적 책무라는 사실을 회피할 수 없었다."

인플레이션에 맞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치권의 압박도 받았다. 그는 1984년 레이건 대통령 앞에 소집된 일화를 가차없이 증언한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아닌 도서관에서 만난 레이건 대통령은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신에 비서실장 짐 베이커가 말했다.

"대통령께서는 대선 전에 금리를 인상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볼커는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나왔다. 월권 행위를 당한 볼커는 회고록에 흑역사를 박제했다. 그는 책에서 연준의 독립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볼커는 기준금리 인상 과정에서 감수해야 했던 기업들의 혼란과 고통도 빠짐없이 적어뒀다. 인간이기에, 기준금리 인상의 후폭풍을 모두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만약 우리의 정책이 20% 또는 그 이상의 금리 수준을 초래할 것이라고 델포이의 신전(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폴로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예언해주는 공간)이 속삭였다면, 나는 즉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책마을]
다만 그는 덧붙인다. "지금 돌아봤을 때,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없었다. 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여러 압박 속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잡은 덕에 1982년부터 미국 경제는 빛나는 회복세를 보였다. 이 해 8월 17일에 다우지수는 4.9% 상승했다. Fed이 인플레이션의 버팀목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도 그의 유산이다.

"금융 및 경제 안정을 위해 용기 있게 싸웠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을 통제해낸 유일한 사람"(자크 드 라로지에르 전 IMF 총재), "미국의 영웅"(레이 달리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릿지워터 설립자),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논설위원)…. 오늘날 세계적 저명인사들은 볼커를 이토록 추앙한다.

책이 다루는 기간은 '인플레이션 전쟁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책을 여는 볼커의 청년기 이야기는 볼커라는 인물, 그리고 그의 인플레이션 전쟁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그의 프린스턴대 학부 졸업논문 주제는 Fed의 물가안정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물가에 대한 일화도 곳곳에 등장한다. 프린스턴대에 입학한 청년 볼커는 부모로부터 한 달 용돈으로 25달러를 받는다. 과거 누나들이 받았던 용돈 액수대로였다. 볼커는 항변한다. "1930년대 이래로 물가가 두 배나 오른 걸 모르세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볼커는 축구 경기장 핫도그 가판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밀턴 프리드먼과의 키 차이를 적어두는 등 정밀한 묘사는 당시 경제상황과 볼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전직 Fed 의장이 쓴 책이라고 딱딱할 거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첫 출근날 책상 밑 긴급경보 버튼을 호기심에 눌렀다가 건물 전체를 폐쇄시킨 일(책상 밑 숨겨진 선반에서 전임 앨런 스프롤의 노트를 찾아내기도 했다), 어머니가 <경제학개론>에 적어둔 "인간 심리를 배제하는 경제법칙은 신뢰할 수 없다"는 필기를 발견하고 전율한 일화 등이 책 읽는 맛을 돋운다.

한국어 번역은 남민호 한국은행 국제국 국제금융연구팀장이 맡았다. 번역의 결과물이 매끄러울 뿐 아니라 책 끝부분에 덧붙여진 '옮긴이의 말'은 중앙은행가로서 이 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을 번역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볼커가 공직자에게 주어진 결정권을 '권한(authority)'이 아닌 '책임(responsibility)'으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중략) 제 추측으로는 볼커가 기본적으로 공직자를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볼커를 추앙하는 건 다분히 미국적 시각일 수 있다. 볼커는 조지 슐츠 재무부 장관을 설득해 달러 평가절하, 즉 엔화 가치 절상을 이뤄낸다. '플라자합의'에 대한 그의 담담한 묘사를 읽다 보면 등골이 어쩐지 서늘하다. 일본 통화가 절상된 이후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볼커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사회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이슈 때문만이 아니다. 볼커는 서문에서 단순히 Fed 의장으로 지냈던 경험이 중요해서 회고록을 쓴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합중국의 효율적인 운영이 망가져가는 것을 한동안 경험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우려가 점점 깊어진 것이 집필을 결심한 이유다." 그러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퍼지고 공직자들의 자부심이 희석돼가는 현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썼다.

이러니 이 책의 국내 출간을 두고 '드디어!'라며 반가워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