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미 감독,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라 시네프' 진출
"'이씨 가문의 형제들'로 가부장제 지적…외국 관객 반응 궁금"
"교수님한테서 온 전화, '칸영화제 초청' 소식일 줄이야"
"올해 2월에 이미 졸업했는데, 얼마 전 아침에 교수님한테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잠시 '졸업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생각했어요.

"
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로 오는 16일 개막하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진출한 서정미 감독은 칸의 초청 소식을 들었던 때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라 시네프는 칸영화제가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 영화를 선보이는 경쟁 부문이다.

올해는 총 2천여 편이 출품됐는데, 이 가운데 16편만 초청작에 선정됐다.

서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생애 처음 칸에 가게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서 감독은 "칸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면서도 진짜로 초청받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얼떨떨해했다.

"떨리면서도 되게 좋았어요.

한동안은 주위에 말을 못 해서 무척 힘들었어요.

하하. 영화제 집행위원회에서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초청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감독들에게 요청하거든요.

배우랑 스태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못했어요.

엄마도 밖에 자랑을 못 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
"교수님한테서 온 전화, '칸영화제 초청' 소식일 줄이야"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도 있지만, 서 감독이 칸 초청을 예상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영화에 한국적 정서가 가득 배 있기 때문이다.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할아버지가 죽고 시골집을 물려받게 된 손주와 이를 막으려는 여자 형제들의 싸움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장손 상속, 제사, 장례 문화 등 외국 관객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요소가 많다.

서 감독은 "칸에서 외국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국 관객들이 웃었던 포인트에서 웃어줄지 궁금하다"며 미소 지었다.

"이 영화로 최종적으로는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어요.

저는 세자매 중 막내고, 아버지는 여섯 남매 중 유일한 남자라서 항상 여자가 많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런데도 친척들은 가부장제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더라고요.

"
그는 점점 커가면서 가족들의 이런 태도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아들과 대를 잇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걸 보고서 이를 주제로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서 감독은 "집을 두고 일어나는 한 가문의 소동극 같은 영화지만, 본질적으로는 가부장제와 고향, 대(代)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교수님한테서 온 전화, '칸영화제 초청' 소식일 줄이야"
서 감독은 이 작품으로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욕심이 많아서 졸업 요건보다 더 많은 영화를 찍고서야 학교를 마쳤다"고 회상했다.

그는 졸업 후 드라마 보조 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중이라고 한다.

서 감독은 "영화 공부를 하면서 내가 '애매한 재능'을 가졌다고 느낀 순간이 많았다"며 "이런 재능으로 이 길에서 오래도록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고 털어놨다.

OTT(동영상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영화와 극장이 내리막길을 걷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했다.

"친구 중에도 시리즈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요.

영화에 대한 투자는 줄고 있고 저 같은 신인 감독이 설 자리는 훨씬 좁은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기회가 된다면 영화를 계속 찍고 싶어요.

영화는 극장에서 단순히 영상을 시청하는 게 아니고 여러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유일한 매체라 생각합니다.

"
"교수님한테서 온 전화, '칸영화제 초청' 소식일 줄이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