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작가 데이먼 갤것 작품…아파르트헤이트 둘러싼 한 가문의 몰락 이야기
2021년 부커상 받은 화제작 '약속' 국내 출간
암으로 투병 중이던 레이철은 자신을 정성껏 돌보는 흑인 하녀 살로메에게 방 세 칸짜리 양철 판잣집을 주자고 남편에게 말한다.

남편은 그러나 아내가 죽자 이 약속을 모른 척한다.

약속을 지키자고 주장하던 막내딸 아모르는 실망감에 고향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농장으로 돌아와 살로메와 마주한다.

30년 전 전 엄마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간판 작가로 손꼽히는 데이먼 갤것의 '약속'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흑백 인종분리 정책) 폐지를 전후로 스와트 가문의 30여 년에 걸친 몰락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2021년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을 받은 소설 '약속'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남아공의 현대사를 알면 이 소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약속한 자, 약속을 지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 순수한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려는 자 간에 벌어지는 갈등 관계에만 주목해도 이야기의 매력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

원래 그들(흑인)의 땅이었던 것을 돌려주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은 비단 남아공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식민 지배를 당했거나 지배계층의 억압과 수탈을 오래도록 경험한 사회의 일원이라면 소설의 문제의식에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무거운 주제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건 '의식의 흐름'을 비롯해 자유간접화법, 영화 촬영 기법과 유사한 서술 방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인물들의 심층적 의식과 감정을 다층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역량 덕이다.

작품 곳곳에 배치한 유머와 희극적 요소도 주제의 무거움을 덜어준다.

이 작품이 2021년 부커상을 받을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마야 자사노프 하버드대 교수는 "새로운 형식의 실험, 독창적이고 유연한 목소리"라며 "읽을 때마다 책이 자라나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문학사상. 이소영 옮김. 51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