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기술 소유권을 놓고 소송 중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패트릭 프래그먼 최고경영자(CEO)가 폴란드 현지 언론에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한국 원전이 폴란드에 지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30일 파악됐다. 한수원이 미국 에너지부에 낸 체코 원전 수출 신고서가 반려된 데 이어 협력의향서(LOI)까지 체결한 폴란드 원전 수출 프로젝트마저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폴란드 언론인 에너제티카24와 폴리시뉴스에 따르면 프래그먼 CEO는 지난 26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프로젝트는 폴란드에서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형 원전이) 미국의 수출 통제와 국제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폴란드 같은 법치 국가에서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기술 채택을 검토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프로젝트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원전에 대한 우리 입장은 폴란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수원과의 합의 가능성에는 “협상의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다만 “한쪽에서 분쟁이 있다고 해서 다른 쪽에서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며 한수원과의 협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한수원은 지난해 10월 폴란드전력공사(PGE)와 퐁트누프 지역에 원전을 짓기 위한 LOI를 체결했지만 아직 본계약은 맺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자로(APR1400)의 설계 기술에 자신들의 지식재산권이 포함돼 있다며 한국이 임의로 원전을 수출할 수 없게 해달라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폴란드까지 번진 '원전갈등' 불씨…韓·美, 협상 가능성은 열어놔

패트릭 프레그먼 웨스팅하우스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은 한국이 추진 중인 폴란드 원전 건설사업에 제동을 건 것이다.

[단독] 美 웨스팅하우스 CEO "韓, 폴란드 원전 못 지을 것"
폴란드 정부는 자국에서 짓기로 한 원전 중 6기를 미국에 발주하고, 이와 별도로 2~4기의 추가 원전 건설을 한국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10월 폴란드전력공사(PGE)와 협력의향서(LOI)까지 체결했다. 한국이 맡게 될 폴란드 원전사업 규모는 최대 300억달러(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4일 방한한 보이치에흐 동브로프스키 PGE 사장도 한수원의 폴란드 원전 수출 본계약 가능성에 대해 “언제든 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프레그먼 CEO는 폴란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형 원자로는 완전히 개발되지 않은 미성숙한 기술”이라며 “폴란드가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싶다면 (웨스팅하우스 기술인) AP1000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추진 중인 폴란드 원전 건설사업까지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 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한·미 양국 정부는 분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7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미 원전기업 간 법률적 다툼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했지만 양국 정부의 공동발표문에는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오히려 한·미 정상 공동선언문에 ‘지식재산권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우리가 불리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의 주장과 달리 폴란드 원전 프로젝트 수행에는 장애물이 없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의 원전 수출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기술 수수료를 받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수원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자문료 등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