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큰 장외파생상품 거래 자격 문턱 낮춰 …빚더미 투자자 속출
금융위 책임논란…'CFD 확산땐 뒷짐·요란한 뒷북조사로 화키워'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손실 위험에 놓인 8개 종목 무더기 주가 폭락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금융위원회의 책임론이 28일 제기되고 있다.

이번 주가 폭락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장외 파생상품인 차액결제 거래(CFD)가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동안 금융위는 위험 관리 등 제도 마련에는 소홀한 채 개인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완화해 개인 투자자들이 위험에 노출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 "개인전문투자자 문턱 낮추고 위험관리는 구멍"…빚더미 투자자 속출
차액결제 거래(Contract for Difference·CFD)는 실제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변동을 이용한 차익을 목적으로 매매해 진입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을 당일 현금 정산하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다.

증거금률은 증권사들이 종목별로 40∼100% 수준에서 설정할 수 있어 최대 2.5배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가능하다.

차입을 활용하는 상품이어서, 투자 관련 위험 감수 능력이 있는 전문투자자만 거래가 허용된다.

문제는 금융위가 개인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낮춘 데 반해 위험 관리를 위한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0년 내놓은 자본시장포커스 자료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의 관심 증대와 개인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 완화 등이 국내 증권사들의 CFD 서비스 도입 확대에 주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지난 2019년 11월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위해 개인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완화했다.

개인 전문투자자의 자격은 금융투자상품 잔고 기준이 기존 5억원 이상에서 5천만원 이상으로 완화했으며 소득 기준도 대폭 낮췄다.

이에 2018년 말 3천명을 밑돈 전문투자자 수는 수십만명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CFD는 처음 도입한 영국과 독일, 호주 등에서 거래가 활발하지만,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장외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 조치로 자국 내 거주자와 시민의 CFD 거래가 금지돼 있다.

높은 차입을 사용해 거래하는 경우 기초자산 가격 또는 관련 시장 요인이 조금만 변해도 평가 금액은 크게 변해 투자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CFD 계약 구조상 주가 변동성 확대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 된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CFD 거래에 대한 샘플 분석을 한 결과 82%의 투자자가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했다.

더구나 이번 사태에서 금융위가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공정거래 혐의 조사 과정을 여과 없이 공개하면서 시장 불안감과 주가 폭락을 더 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당국은 주가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사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며 "조사 과정이 여과 없는 노출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임창정과 같은 다수의 투자자가 투자 금액에 따라 수십억원의 빚을 지게 될 처지에 놓인 것으로 관측된다.

주가 폭락과 반대매매로 인한 손실액은 일단 외국계 증권사가 충당하고 나면 이를 국내 증권사가 먼저 갚아주고서 나중에 개인투자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장외파생 전문투자자 기준↑…투자자 보호 규제 마련해야"
사태가 확산하자 국내 증권사들은 이날 CFD 신규 가입과 매매를 잇달아 중단했다.

전문가들은 부작용 확산을 차단하려면 전문투자자 진입 기준을 강화하고 위험관리와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날 금융감독원이 '증권업계 시장 현안 소통 회의'를 연 자리에서 증권사 사장들에게 "전반적으로 내부 통제나 증권사 간 투자자의 차입 총액 등 정보에 대한 공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한 사람이 A증권사에서 신용이나 CFD를 하고 B증권사에서 CFD를 하는데 해당 고객이 어떤 리스크(위험)를 가졌는지 판단도 어렵다"며 "증권사들이 고객을 정확히 모른다는 그런 한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은 "이번 사태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CFD에 대한 위험 관리 시스템을 전혀 마련하지 않은 탓에 발생한 책임이 있다"며 "신용과 공매도와 달리 CFD는 개인의 진입이 수월해졌으나 정보수집, 공시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도 "상품 등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에 대한 위험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CFD 관련 제도를 만들고 영업행위와 위험관리 등에 대한 세부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국내에선 CFD에 대한 세부적 규제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제증권거래위원회(IOSCO)에서 CFD 등 장외거래 차입 상품에 대해 지나친 거래 위험 등을 지적하고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해 규제를 권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금융위가 혁신이나 규제 완화 등 위험성에 대비 없이 허용해준 것이 문제"라며 "장외파생상품은 개인 전문투자자 기준을 높이거나 기관 등 전문투자자에만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