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어둠 걷어낸 찬란한 음악…오페라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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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예술의전당서 30일까지 공연
눈동자 형상화한 무대와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극의 역동성 더해
맥베스 부부 역 양준모·임세경, 완벽한 가창과 연기로 역량 발산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는 성공적인 프로덕션을 완성하기가 유난히 어려운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단골 소재인 '불같은 열정' 대신 '욕망으로 병든 영혼'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배경이 중세의 스코틀랜드여서 무대의 어둠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르디의 음악은 이처럼 어두운 소재나 배경이 무색하게 밝고 활력이 넘친다.
기본적으로 오페라 작품의 음악에서 출발해 연출 콘셉트를 구상하는 오페라 연출가에게는 이런 이유로 '맥베스'의 연출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연출가는 극의 내용에 상응하는 어두운 분위기로 무대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27일 막을 올린 국립오페라단의 '맥베스'를 연출한 파비오 체레사, 무대디자이너 티치아노 산티, 의상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는 음악의 분위기에 무대를 맞췄다.
조명도 대체로 밝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시종 어두운 무대에 집중해야 하는 피로감이 없어 관극이 훨씬 수월했다.
무대 위에는 인간세계의 행위들을 지켜보는 거대한 눈의 형상이 입체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막부터 4막까지 동일한 무대 구조가 지속되지만, 이 구조물의 끊임없는 변화 덕분에 지루할 틈은 전혀 없다.
운명을 상징하는 이 눈동자는 카메라 조리개처럼 열리고 닫히면서 그 틈으로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때로는 일식을 일으켜 어둠을 만들기도 한다.
눈과 그 주변부의 프로젝션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도 무대의 역동성을 더했다.
무대의 몰입도를 높인 또 하나의 요소는 분장디자인이었다.
주·조역 가수들과 합창단원 모두의 분장은 운명과 욕망에 매인 병적인 영혼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맥베스 부부와 합창단은 다들 같은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있는데, 이들이 본래는 자연 상태의 인간으로서 수평적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물질과 권력을 향한 비정상적인 탐욕은 시간이 갈수록 맥베스 부부의 의상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그 위에 번쩍이는 황금빛이 더해진다.
실성한 레이디 맥베스가 던컨 왕을 시해할 때 손에 묻은 피를 계속 닦아내려는 4막의 장면에서 양손을 문지르는 대신 붉은 장갑을 하나씩 벗는 것도 흥미로웠다.
1막에서 맥베스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하는 세 마녀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 노른(Norn)들과 같이 피처럼 붉은 운명의 실로 인간을 옥죄고 통제한다.
이날 공연에서 관객의 열광을 이끌어낸 주역은 맥베스 부부였다.
'레이디 맥베스' 역의 소프라노 임세경은 베르디가 소망했을 법한 완벽한 가창과 연기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음높이의 폭이 큰 이 어려운 배역을 맡아 임세경은 고음과 저음에서 모두 아쉬움이 없었고, 경이로운 음량과 에너지를 과시했다.
남편에게 살인을 사주할 때의 사악한 미소와 음산한 음색 역시 압권이었다.
이미 유럽과 국내 무대에서 '맥베스' 역으로 노련함을 쌓은 바리톤 양준모는 폭발적인 가창으로 역량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욕망, 불안, 죄책감, 분노의 표현뿐만 아니라 모든 욕망을 포기한 듯한 4막의 아리아까지 양준모는 매 순간 맥베스의 현신이었다.
맥베스 부부에게 희생되는 두 인물인 '방코' 역의 베이스 박종민, '맥더프' 역의 테너 정의근은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절절하고 애틋한 자식 사랑을 토로하는 각자의 주요 아리아 한 곡만으로도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남겼다.
이브 아벨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펼친 음악은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치밀함의 극치를 선사했다.
매 순간 텍스트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의 섬세한 음영은 감탄을 자아냈다.
도입부에서는 지휘자의 숨 가쁜 템포를 끝까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으나, 오케스트라와 노이오페라코러스는 경탄할 만한 집중력으로 관객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맥베스'를 체험하게 했다.
특히 던컨 왕 살해 직후의 1막 피날레 합창의 밀도는 압도적이었다.
프로그램 북의 알찬 정보도 감상에 도움이 됐다.
다만, 대본 번역이 때로 지나치게 직역이어서 의미가 한눈에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은 부분은 조금 아쉽다.
공연은 30일까지.
rosina@chol.com /연합뉴스
눈동자 형상화한 무대와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극의 역동성 더해
맥베스 부부 역 양준모·임세경, 완벽한 가창과 연기로 역량 발산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는 성공적인 프로덕션을 완성하기가 유난히 어려운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단골 소재인 '불같은 열정' 대신 '욕망으로 병든 영혼'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배경이 중세의 스코틀랜드여서 무대의 어둠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르디의 음악은 이처럼 어두운 소재나 배경이 무색하게 밝고 활력이 넘친다.
기본적으로 오페라 작품의 음악에서 출발해 연출 콘셉트를 구상하는 오페라 연출가에게는 이런 이유로 '맥베스'의 연출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연출가는 극의 내용에 상응하는 어두운 분위기로 무대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27일 막을 올린 국립오페라단의 '맥베스'를 연출한 파비오 체레사, 무대디자이너 티치아노 산티, 의상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는 음악의 분위기에 무대를 맞췄다.
조명도 대체로 밝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시종 어두운 무대에 집중해야 하는 피로감이 없어 관극이 훨씬 수월했다.
무대 위에는 인간세계의 행위들을 지켜보는 거대한 눈의 형상이 입체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막부터 4막까지 동일한 무대 구조가 지속되지만, 이 구조물의 끊임없는 변화 덕분에 지루할 틈은 전혀 없다.
운명을 상징하는 이 눈동자는 카메라 조리개처럼 열리고 닫히면서 그 틈으로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때로는 일식을 일으켜 어둠을 만들기도 한다.
눈과 그 주변부의 프로젝션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도 무대의 역동성을 더했다.
무대의 몰입도를 높인 또 하나의 요소는 분장디자인이었다.
주·조역 가수들과 합창단원 모두의 분장은 운명과 욕망에 매인 병적인 영혼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맥베스 부부와 합창단은 다들 같은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있는데, 이들이 본래는 자연 상태의 인간으로서 수평적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물질과 권력을 향한 비정상적인 탐욕은 시간이 갈수록 맥베스 부부의 의상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그 위에 번쩍이는 황금빛이 더해진다.
실성한 레이디 맥베스가 던컨 왕을 시해할 때 손에 묻은 피를 계속 닦아내려는 4막의 장면에서 양손을 문지르는 대신 붉은 장갑을 하나씩 벗는 것도 흥미로웠다.
1막에서 맥베스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하는 세 마녀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 노른(Norn)들과 같이 피처럼 붉은 운명의 실로 인간을 옥죄고 통제한다.
이날 공연에서 관객의 열광을 이끌어낸 주역은 맥베스 부부였다.
'레이디 맥베스' 역의 소프라노 임세경은 베르디가 소망했을 법한 완벽한 가창과 연기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음높이의 폭이 큰 이 어려운 배역을 맡아 임세경은 고음과 저음에서 모두 아쉬움이 없었고, 경이로운 음량과 에너지를 과시했다.
남편에게 살인을 사주할 때의 사악한 미소와 음산한 음색 역시 압권이었다.
이미 유럽과 국내 무대에서 '맥베스' 역으로 노련함을 쌓은 바리톤 양준모는 폭발적인 가창으로 역량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욕망, 불안, 죄책감, 분노의 표현뿐만 아니라 모든 욕망을 포기한 듯한 4막의 아리아까지 양준모는 매 순간 맥베스의 현신이었다.
맥베스 부부에게 희생되는 두 인물인 '방코' 역의 베이스 박종민, '맥더프' 역의 테너 정의근은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절절하고 애틋한 자식 사랑을 토로하는 각자의 주요 아리아 한 곡만으로도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남겼다.
이브 아벨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펼친 음악은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치밀함의 극치를 선사했다.
매 순간 텍스트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의 섬세한 음영은 감탄을 자아냈다.
도입부에서는 지휘자의 숨 가쁜 템포를 끝까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으나, 오케스트라와 노이오페라코러스는 경탄할 만한 집중력으로 관객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맥베스'를 체험하게 했다.
특히 던컨 왕 살해 직후의 1막 피날레 합창의 밀도는 압도적이었다.
프로그램 북의 알찬 정보도 감상에 도움이 됐다.
다만, 대본 번역이 때로 지나치게 직역이어서 의미가 한눈에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은 부분은 조금 아쉽다.
공연은 30일까지.
rosina@cho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