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물타기에 나섰다.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코너에 몰리자 저자세를 취해왔지만 태세 전환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연이틀 불법 정치자금 관련 수사를 받는 여당 전직 의원의 실명을 언급했다. 당 안팎에서는 돈봉투 의혹 핵심 인물인 송영길 전 대표 귀국과 탈당을 계기로 사법 리스크를 정치권 전반으로 물타기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돈봉투 의혹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송 전 대표와 통화했는지, 향후 만날 계획이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박순자 의원 수사는 어떻게 돼갑니까. 관심이 없으신가 보군요”라며 동문서답했다. 이 대표가 언급한 박 전 의원(당시 미래통합당)은 지역구인 경기 안산지역 시의원들에게 공천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구속기소됐다.

이 대표는 전날에도 돈봉투 의혹 핵심 피의자인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출당 필요성을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김현아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취재진에 되물었다. 국민의힘 소속인 김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선 “제1야당 대표가 대놓고 물타기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대표는 비공개 지도부 회의에서도 김 전 의원 이슈를 직접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송 전 대표가 자진 탈당을 선언한 이후 그와 관련된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고리로 외교 문제를 최대한 정치 쟁점화하면서 사법 리스크는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뿌려졌다는 것과 여당 의원이 공천 장사를 했다는 것은 물타기가 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