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삶의 기반 흔든 중대 범행…일부 피해 변제된 점은 고려"
피해자 "전세권 설정했는데도 체납 압류에 밀려…국가도 사기에 동조한 것"

전국에 오피스텔과 빌라 등 3천400여채를 보유한 이른바 '빌라의 신'으로 불리는 전세사기 일당이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았다.

3천400여채 '빌라의 신'에 1심서 구형량보다 높은 '징역 5∼8년'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단독 장두봉 부장판사는 25일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모(43)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범 권모 씨와 박모 씨에게 징역 6년과 5년을 각각 선고했다.

장 판사는 "이 사건은 서민층과 사회 초년생들로 이뤄진 피해자들의 삶의 기반을 흔든 매우 중대한 범행"이라며 "피해자들은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는 "피고인들은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당시 별다른 수입이 없어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이들을 속여 보증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피해자는 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변제받은 점,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나 일부도 피해를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최씨 등은 2020년 4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오피스텔이나 빌라 등의 임대차보증금 액수가 실질 매매대금을 웃도는 이른바 '깡통전세'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수법으로 총 31명으로부터 70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깡통전세는 통상 담보 대출과 전세 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실거래 매매가보다 높아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전세 형태를 말한다.

수사 과정에서 권씨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된 임대차계약이 1천건 넘게 확인되면서, 그에겐 '빌라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씨 등은 임차인이 지불한 임대차보증금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계약을 동시에 진행, 돈을 들이지 않고 주택 소유권을 취득하는 '무자본 갭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은 이 과정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속이거나 중요한 정보를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앞서 검찰은 이 사건 결심 공판에서 최씨에게 징역 7년을, 권씨 등 2명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피해자 4∼5명은 검찰의 구형량보다 선고 형량이 중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들에게 더 무거운 형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20년 8월 경기 수원시 빌라에 보증금 2억3천만원을 냈다는 한 방청객은 "전세금 반환보증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고 또 다른 비용이 들었다"며 "피고인들에게 더 엄벌이 내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3월 서울 동작구 빌라에 동생이 2억3천만원을 주고 전세를 살았다는 한 방청객은 "전세권까지 설정했는데 세금 체납으로 압류돼 변제를 못 받는 상황"이라며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한 전세금을 떼일까 봐 전세권 설정 등 절차를 완벽히 마쳤다고 생각했는데도 피해를 본 것이다.

사기범들에게 국가가 동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씨 등은 오피스텔 등을 분양받을 당시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있었지만, 부동산 세금이 증가하고 경기도 급격히 악화해 반환하지 못했을 뿐이지 피해자들을 속일 의사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들에 대한 추가 사기 피해 사실을 파악하는 등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까지 300여명의 전세보증금 600억여원의 피해를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수사 초기엔 고소장을 제출한 피해자가 많지 않았다"며 "현재까지 파악된 추가 피해에 대해 단계적으로 검찰에 송치해 더 중한 처벌이 내려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