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워싱턴 이상고온이 초록세상 몰고 왔듯이 한미관계도…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미국의 요즘은 기후 변화를 하루하루 실감하는 나날이다.

워싱턴DC는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로 그 유명한 벚꽃이 제철도 아닌 3월에 이미 만개했다 져버렸다.

30℃ 근처까지 가는 더위에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한복판에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경제와 안보 양 축 모두에서 질적인 관계의 도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극적인 기후변화가 몰고 온 열풍보다 더 뜨거운 기운이 내심 절실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국빈 방문은 미국 정부가 우방에 제공하는 호의 가운데 가장 손에 잡히는 가시적 조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국빈 초청이다.

그만큼 까다롭게 고른다는 의미다.

국빈 방문을 과거에 경험해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정상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공식이나 실무 방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는 점을 들어 격의 없는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에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거론한다.

실제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공식 정상회담과 국빈 만찬 이외에도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함께 방문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친교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관계가 역대와 비교해 손꼽힐 정도로 부드러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미국이 가장 껄끄럽게 바라봐 온 한일 관계에서 진전을 이룬 데다 미중 관계의 틈새에서 줄다리기를 해 오던 그간의 기조에서도 확연한 변화가 느껴진다.

윤 대통령 본인이 방미를 앞둔 외신 인터뷰에서는 비록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 LG, SK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틈만 나면 거론할 정도로 미국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 역시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 정부에는 부담일 것 같다.

이만큼 해줬는데 무엇을 가져올 것이냐, 지켜보는 눈이 많을 듯 싶다.

미묘한 시점이어서 '로키'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의 기밀 유출 사건으로 불거진 미국의 한국에 대한 도·감청 의혹 등 양국 간 짚고 넘어가야 할 현안도 적지 않다.

재선 도전을 앞두고 국내 정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원천기술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제조업 부활을 선언하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에도 상당한 압박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외교 영역에선 실무선에서 몇 년을 오가는 말보다 톱 레벨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양국 정상이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지금보다 더 적기는 없어 보인다.

이 봄날에 워싱턴을 휩싼 이상고온이 어느 해보다 역동적인 신록의 계절을 몰고 왔듯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70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을 한층 더 견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