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반환 보증서까지 써주며 범행 가담…사기 피해자 양산
"경매 넘어간 적 없어요"…'건축왕' 공범 중개인들의 거짓말
"근저당권 설정된 집을 전문으로 합니다.

한 번도 경매에 넘어간 적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2022년 1월 인천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총괄실장과 중개사가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망설이는 손님을 안심시켰다.

중개사는 "건물을 짓고 투자도 하는데 (나중에) 전세 보증금도 충분히 돌려줄 사람"이라고 임대인을 소개했다.

그런데도 손님은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데 혹시 모르니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싶다"며 계속 주저했다.

중개사는 "근저당권이 있지만 (임대인이) 이자를 잘 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만약에 문제가 생겨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면서 "안전한 집이어서 보증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며 전세보증금 반환을 약속하는 '이행보증서'까지 써줬다.

같은 달 인천의 또 다른 중개사사무소에서도 공인중개사가 미추홀구 아파트 전세 계약 앞둔 손님에게 "임대인이 이자를 성실하게 낸다"고 자랑했다.

그는 "돈이 많은 사람이라 집이 경매에 넘어갈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고 단언했다.

"경매 넘어간 적 없어요"…'건축왕' 공범 중개인들의 거짓말
21일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총괄실장과 공인중개사들의 이런 감언이설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들은 건축업자 A(61)씨가 직접 운영한 공인중개사무소 직원들이었고, 월급을 받고 그의 매물을 소개하는 '중개팀' 소속이었다.

A씨는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주택 2천708채를 보유해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렸다.

중개팀 소속 공인중개사들은 그가 지은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바지 임대인'들 명의로 손님들과 계약했다.

그러나 2022년 1월 당시는 A씨가 자금 경색을 해결하지 못해 대출 이자를 연체하고 그의 부동산들이 잇따라 임의 경매(담보권 실행 경매)에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그 무렵 A씨가 내지 못한 부동산 재산세는 3억7천만원이 넘었다.

이후 자금 사정이 계속 나빠져 경매에 넘어가는 A씨의 아파트와 빌라가 더 늘었고,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몰릴 상황이 됐다.

최근 인천에서는 A씨 일당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3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경찰 수사 결과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A씨 일당은 모두 61명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481채의 전세 보증금 388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 A씨 일당의 범죄수익을 추적하고, 기소 전 수사단계에서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