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고위급 소통 미뤄지는 가운데 중국 장관들 미국 CEO와 적극 대화
中, 美 상대 '정랭경온'…정무 대화엔 냉담, 기업엔 '버선발'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를 공식 출범시킨 중국이 미국에 '정랭경온(政冷經溫·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따뜻함)' 기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초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동시에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던 중국은 미국의 고강도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공세와 '정찰 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이라고 주장) 갈등,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의 지난 5일 회동 등을 거치며 대미 관계 개선의 현실적 장벽을 감지한 분위기다.

2월 초로 예정됐다가 '풍선 갈등' 속에 연기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과 미국발로 거론됐던 정상 간 통화가 오리무중인 상황, 주미 중국 대사였던 친강이 지난해 말 외교부장으로 발탁된 이후 3개월여 동안 후임 주미대사 내정 발표가 없는 상황 등은 중국의 냉담한 대미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국이 5∼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극진한 예우를 한데서 보이듯 유럽에는 여전히 적극적인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중 고위급 외교 접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논평 요구에 "현재 중·미 관계가 난관에 봉착한 책임은 중국 측에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과 중국의 이익 침해를 중단해야 한다"며 "중·미 관계에 '가드레일'을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양국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훼손하는 행태를 중단하고 중국과 마주하며 중·미 관계가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 궤도로 돌아가도록 추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中, 美 상대 '정랭경온'…정무 대화엔 냉담, 기업엔 '버선발'
반면 중국은 경제 영역에서는 정치 쪽과 다른 대미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11일 베이징에서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의 패트릭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 안정·유지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왕 부장은 이 자리에서 인텔을 포함한 다국적 기업을 위해 중국이 더 넓은 시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열린 발전포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리창 총리 등이 포럼에 참가한 다국적 CEO들과 단체로 만난 것과는 별개로,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정산제 주임과 왕 부장 등 장관급 인사 2명이 쿡 CEO와 각각 회동했다.

이와 함께 상하이에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주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으로선 미국 기업들에 중국 시장을 열어줌으로써 경제 회복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외자 유치면에서 성과를 내는 한편, 중국과 이해관계로 깊이 엮인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대중국 디커플링을 막는 저지선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발로 추진 사실이 공개된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도 큰 틀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미국에 냉랭해진 중국이지만 경제 영역에서는 미국에 협력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에 현재의 미·중 갈등은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불확실성·리스크이기에 고위급에서 정치적 돌파구가 마련되기 전에는 미중 경제 협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국도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뒤 블링컨 방중 재추진 등을 통해 미국과 담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中, 美 상대 '정랭경온'…정무 대화엔 냉담, 기업엔 '버선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