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배우 가운데 얼굴에 칼을 대지 않는 연기자는 딱 둘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터라 100% 확신할 수 없고, 유명 스타급에 한정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명의 여배우만큼은 성형을 전혀 하지 않은 얼굴(필러도 넣지 않는 얼굴)로 유명하다.

한명은 이혜영이고 또 한명이 바로 전도연이다.
전도연은 올해로 51세지만, 자신보다 열 살 아래 남자와 연애를 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잘 어울린다.

전도연은 엄청나게 말랐는데 그 때문인지 실제 나이보다 12살은 어려 보인다.

‘일타 스캔들’에서 전도연과 정경호는 그렇게 티키타카 연애담을 펼쳤다. 게다가 극중 전도연은 고3으로 올라가는 여학생의 엄마다.

드라마상으로도 여자는 남자의 연상으로 나오지만, 둘의 연애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한국의 연애문화가 이제 나이차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 탓도 있지만, 전도연의 자연스런 미모가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다. 아마 전도연이 없었다면, 작가나 연출이 애초에 캐스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천의 얼굴을 지닌 전도연.

깡마른 모습에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지만, 한번 마셨다 하면 두주불사의 주량과 혀를 감는 콧소리 애교가 뺨을 친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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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양면성과 이중성은 연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때로는 순애보의 여성 역할(‘너는 내 운명’)을 해내고, 또 때로는 매우 거칠고 자극적인 역할(‘피도 눈물도 없이’ ‘무뢰한’)을 마다 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술집 새끼 마담의 끼 부리기(‘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도 거부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전도연의 작품 중 하나는 ‘무뢰한’이다.

이 영화에서 혜경은 일종의 팜므 파탈이다. 생존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고, 두 남자(박성웅과 김남길)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 식대로 남자 둘을 사랑한다.

이런 여자일수록 팔자가 기구할 수밖에 없다. 늘 비극을 안고 살아가기에 세련미와 악다구니 사이의 수렁에 빠져 쿨럭거리기 십상이다.

‘무뢰한’에서 제일 인상깊은 장면(사진)이다.
양면성과 이중성을 가진 배우, 전도연
여자는 남자가 결국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걸 알고 남자는 여자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며, 여자는 또 남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둘은 사랑하지만 허탈해한다. 누군가 이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을 짐작한다. ‘무뢰한’의 엔딩 장면은 그래서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정됐던 일이다. 사랑과 배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전도연의 전작 영화의 ‘구질’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재림이 만든 ‘비상선언’은 몇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왜 그 역에 전도연인가’ 라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웠던 영화였다.

오히려 전도연의 내면과 그 잠재력을 보여준 것은 이해준 감독이 만든 ‘백두산’이었다. 여기서 전도연은 북한 특수요원 이병헌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쏴 죽이는 마약 중독자 아내로 나온다.
영화 '백두산' 캡처
영화 '백두산' 캡처
특별출연이어서 아주 잠깐만 나오는 데다 매우 망가진 모습이어서 ‘저 여자가 설마 전도연이야’ 라며 눈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감독 이해준의 심미안이 놀랍다는 것, 전도연은 늘 새로운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손에 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전도연의 새 작품은 넷플릭스 신작이다. ‘불한당’과 ‘킹 메이커’를 만든 변성현 감독의 OTT용 영화 ‘길복순’이다. 전도연은 여기서 화려하고도 잔인한 액션을 펼친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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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있다.

아마도 영화적 레퍼런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서 가져온 듯하다.

늘 진화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그리고 외모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건다는 점에서 전도연은 향후 20년은 보장받은 배우로 평가된다.

혹시 아는가. 나이 70이 다 돼서도 리암 니슨처럼 여성판 ‘테이큰’ 시리즈를 찍을 지.

그렇게 된다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