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대회 마스터스를 주최하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는 코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로 정평이 난 골프장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관리하지 않는다. 유리판처럼 빠른 그린과 곳곳에 파놓은 함정을 피해 4라운드를 걷다보면, 세계 최고 골프선수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그만큼 변별력이 높다는 의미다.

그런 오거스타내셔널GC에도 예외가 있다. 13번홀(파5)이다. 철쭉으로 가득한 이 홀은 ‘아젤리아(철쭉) 홀’로도, ‘마스터스에서 가장 만만한 홀’로도 불린다. 총길이가 510야드로, 파4인 11번홀(520야드)보다도 짧다.

덕분에 그동안 많은 선수가 이 홀에서 ‘투 온’에 성공해 버디를 잡았다. 세컨드 샷을 쇼트 아이언이나 웨지로 잡을 수 있다보니, 이글을 낚는 선수도 대회 때마다 여럿 나왔다. 작년에만 이 홀에서 이글 6개, 버디 91개가 쏟아졌다. 평균 타수는 4.77타. 파로는 본전도 못 찾았다는 얘기다.

‘변별력 높은 메이저대회 구장’인 오거스타내셔널GC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홀을 만만하게 만든 원흉인 ‘짧은 전장’에 손을 댔다. 13번홀의 티잉구역을 35야드 뒤로 빼 총 전장을 545야드로 늘린 것. “왼쪽으로 휘어진 도그레그 홀인 만큼 티잉구역을 뒤로 빼면 두 번째 샷 공략이 까다로워질 것”이란 전망과 함께 13번홀은 올해 마스터스의 최대 변수 중 하나로 꼽혔다.

프레드 리들리 오거스타내셔널GC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많은 선수들이 13번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공략하겠지만 과거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며 “두 번째 샷에서 3·4번 아이언이나 하이브리드를 잡는 선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열린 1라운드 결과는 이런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이날 13번홀의 평균 타수는 4.721타로, 지난해보다도 낮았다. 전장이 35야드 길어졌음에도 1라운드에서만 이글 3개가 쏟아졌다. 김주형(21)도 그랬다. 그는 드라이버로 314야드를 보낸 뒤 아이언으로 공을 홀 3m 옆에 붙여 이글을 잡아냈다. 이날 버디와 파는 각각 36개, 33개 나왔다. 보기, 더블보기를 기록한 선수는 각각 11명과 2명에 그쳤다.
'쉬운 13번홀' 파 그쳐…우즈, 커트탈락 위기
반대로 보너스 같은 이 홀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한 대가는 컸다. 대표적인 예가 타이거 우즈(48·미국)다. 그는 티샷이 크게 밀리면서 파에 그쳤다. 교통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박은 채 뛰는 우즈는 이날 내내 얼굴을 찌푸리며 불편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2오버파 74타 공동 54위에 그쳐 커트 통과(상위 50위)도 불투명한 상태다. 우즈가 마스터스 1라운드에서 2오버파를 기록한 것은 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우즈는 지난해 마스터스에서는 커트를 통과해 47위로 대회를 마쳤다.

오거스타내셔널GC 측이 13번홀을 개·보수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모두 열한 번이다. 처음 마스터스 대회가 열린 1934년에 13번홀은 480야드였다. 이후 1970년과 2002년 땅을 매입해 티 박스를 뒤로 옮기면서 전장을 늘렸다. 하지만 장비의 발달과 선수들의 향상된 운동능력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급기야 메이저가 아닌 보통 대회에서나 나올 법한 ‘20언더파 우승자’(2020년 더스틴 존슨)가 나오자 오거스타내셔널GC도 더 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타깃은 ‘마스터스의 만만한 홀’이 된 13번홀. 오거스타내셔널GC는 10여 년 전부터 이 홀의 전장을 늘리기 위해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사촌’ 오거스타CC와 땅 매매 협상을 벌였다. 결국 티 박스를 35~50야드 뒤로 뺄 정도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2000만달러(약 263억7000만원)를 건넸고,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오거스타내셔널GC는 오로지 마스터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큰돈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1차전에선 오거스타내셔널GC가 돈과 시간을 들여 파놓은 덫을 골퍼들이 쉽게 피했다. 하지만 아직 세 번의 라운드가 남아 있다. 남은 라운드의 13번홀에 전 세계 골프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