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버리 전경. 한경DB
셀리버리 전경. 한경DB
성장성 특례상장 1호 기업. 셀리버리가 상장 5년 만에 상장폐기 위기에 처했다. 한때 미래가치를 인정받으며 시가총액이 3조원을 웃돌기도 했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연구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회사의 재무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탓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 5만명의 몫이 됐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셀리버리는 지난달 24일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같은달 23일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의견거절' 통보받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서다.

2020~2021년 바이오 업종 호황과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무상증자까지 겹치면서 주가는 40만원대(2021년 1월 28일, 종가 38만3900원)에 육박했다. 이제는 거래정지 직전 기준 6680원으로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공모가(2만5000원)와 비교해도 73%가량 밑돈다. 한때 3조원대를 넘겼던 시가총액도 24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조대웅 셀리버리 대표는 지난달 31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 정상화에 목숨을 걸겠다"며 무릎을 꿇고 주주들에게 사과했다. 극단적인 표현까지 하면서 주주들을 달래기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5만명의 개미(개인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말 기준 셀리버리의 소액주주 수는 5만911명이다.

한때 시총 3조 웃돌더니…어쩌다 상폐 위기에 이르렀나

외부감사인인 대주회계법인은 셀리버리의 재무상태를 고려하면 계속기업으로서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제대로 된 감사를 진행하기엔 회사 측이 제공한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봤다. 이럴 때 시장은 보통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료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심각했다. 셀리버리는 2018년 상장 이래 지난해까지 적자를 지속했다. 이 기간 적자폭은 줄어들긴커녕 확대됐다. 연결 기준 2018년 41억원이었던 적자 규모는 지난해 669억원으로 불었다. 자산은 줄고 부채는 계속 늘어난 결과 자기자본(105억원)이 자본금(183억원)보다 적아지며 자본잠식됐다. 연결 기준 자본잠식률은 42.6%다. 별도 기준으론 총부채(476억원)가 총자산(434억원)을 웃도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자본총계는 마이너스(-)43억원이다.

셀리버리의 재무적 위기는 자회사인 셀리버리 리빙앤헬스 인수 때문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장 유지 요건을 맞추기 위해 추진한 신사업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다. 셀리버리는 2021년 11월 유아용 물티슈 업체 아진크린을 149억원을 들여 인수한 뒤 셀리버리 리빙앤헬스로 사명을 바꿨다. 2020년까지만 해도 매출 371억원, 영업이익 13억원을 냈던 아진크린은 셀리버리에 인수된 2021년 4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작년 말 기준으론 영업손실 282억원으로 적자폭이 대폭 늘었다. 2021년 2억원에 그쳤던 당기순손실은 지난해 309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작년 셀리버리 리빙앤헬스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자본총계 -29억원)에 들어섰다.

이 와중에 오는 10월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하는 3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도 문제다. 회사의 현금성자산이 146억원에 불과한 만큼 외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한 상환 가능성은 낮다. 회사 측이 자구안으로 제시한 유·무형 자산과 자회사 매각도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유·무형 자산은 335억원 규모이나 262억원의 유형자산이 담보로 잡혀 있다.

회사는 셀리버리리빙앤헬스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셀리버리리빙앤헬스는 배우 배두나를 모델로 쓴 화장품 ‘더 라퓨즈(THE RAPUEZ)’를 비롯해 미용실과 겸하는 플래그십스토어 ‘셀리라운지’, 마스크·물티슈 브랜드 ‘바이오늘’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모회사의 존폐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매각을 위한 경영성과가 제대로된 가치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배두나 화장품'으로 화제를 모았을 뿐 이미 백화점과 면세점, 온라인 매장 등에서 줄줄이 철수하고 있다. 남아 있는 매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바이오 업계 신뢰 추락…특례상장 허점 드러났단 지적도

이번 셀리버리 사태로 바이오 업계의 신뢰도가 다시 한 번 추락했다는 지적이다. 이미 신라젠과 헬릭스미스 사건을 거치며 신뢰도가 바닥 난 제약·바이오 업계다. 특례상장 제도의 허점이 또다시 드러났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특례상장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거래소가 심사 문턱을 높이고 있어 특례상장을 고려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들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대웅 셀리버리 대표. 사진=한경DB
조대웅 셀리버리 대표. 사진=한경DB
다만 이번 상폐 위기가 연구개발이나 기술이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이오 업종의 특성으로 치부할 문제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바이오 업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연구원은 "특례 제도로 상장했어도 성과를 내는 바이오 기업들은 많다"며 "상폐 위기는 개별 기업의 문제다. 그간엔 시행착오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바이오 기업들도 상장했으면 단순히 연구에 치중하기보단 재무적 상황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는 13일까지가 이의신청 기간이다. 이의신청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셀리버리 관계자는 "대표 사재 20억원 출연, 자회사 및 모든 유·무형 자산 매각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해 이의신청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자구안 내용에 대해선 현재 단계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전했다.

이의신청하면 한국거래소의 개선기간 부여 여부 심의·의결을 거치게 된다. 개선 기간은 차기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다음날부터 10일(영업일 기준)까지다. 약 1년 정도라 보면 된다. 이 기간 상장폐지 사유가 해소되면 거래가 재개되지만 그전까진 거래정지 상태가 유지된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