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접고 고향 옥천에 '락희푸드' 창업…아로니아·딸기 등 가공
4천900㎡ 농사 짓는 농민CEO…또래 청년들과 영농조합 설립 등 준비

[※ 편집자 주 = 좁아진 취업문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청년들의 고민이 깊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이라는 위기의식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모험을 택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현장서 답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열정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꿈을 실현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총 20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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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호텔서 셰프의 꿈을 키우던 청년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산물로 초코볼 등을 만드는 회사의 CEO가 됐다.

[도전하는 청춘] ⑨ 농산물 초코볼 만드는 전직 호텔 셰프 박준우씨
주인공은 충북 옥천군 옥천읍 소재 락희푸드 박준우(33) 대표다.

2018년 창업한 락희프드의 대표 상품은 인근서 생산되는 아로니아, 고구마, 딸기 등 농산물을 가공한 가루에 초콜릿을 입혀 만드는 초코볼이다.

건조한 딸기와 캔디도 만든다.

이 회사는 2020년 농업기술원의 농산업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아로니아 코팅 관련 기술 2건과 식이섬유가 강화된 고구마의 과자류 제조기술 등 특허 3건을 보유할 정도로 실력도 탄탄하다.

지금은 농산물 가공업체를 운영하지만 그의 어린시절 꿈은 요리사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주방과 음식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생 때는 학원 등에서 배운 솜씨로 요리 경진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다.

이후 그는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의 조리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학문적 연구보다는 현장에서 요리하고 싶었다.

한 학기 만에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의 한 유명 호텔의 주방에 취직했다.

그러나 요리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제대로 된 셰프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그는 미국 뉴욕에 있는 호텔 문을 두드린다.

그곳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현지의 조리 아카데미를 통해 본격적인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병역을 위해 3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은 그는 귀국 후 입대 대신 병역특례업체 근무를 택했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새로운 길을 찾았다.

[도전하는 청춘] ⑨ 농산물 초코볼 만드는 전직 호텔 셰프 박준우씨
그는 "식품회사에 근무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며 "가공품을 만드는 데 들어갈 좋은 원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업체에 근무하는 동안 예비창업자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가공식품 업체 창업도 구상했다.

그때 그가 주목한 농산물이 아로니아다.

아로니아가 건강에 좋은 농산물로 알려지면서 생산량이 많이 늘었지만, 떫은맛 때문에 판로가 마땅치 않아서다.

아로니아를 가루로 만든 뒤 초콜릿을 입힌 '아로니아 초코볼'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그는 4년여만에 퇴사하고, 2016년 고향 옥천으로 돌아와 친척의 농지를 임대해 아로니아 농사를 시작했다.

옥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기술을 배우고, 4H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 한켠을 작업장으로 쓰면서 초코볼을 연구했다.

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아로니아 향과 초콜릿의 달콤함이 밴 초코볼이 탄생하자 그는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혼자 농사를 짓고, 자금 없이 사업을 시작하려니 걱정이 앞섰다"며 "힘들지만 즐겁고(樂), 기쁘게(喜) 일하자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락희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귀향 후 8년째 농사와 회사 일을 병행하고 있다.

봄과 여름에는 농사에 집중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초코볼 생산 등에 힘을 쏟는다.

초콜릿 관련 업종은 겨울이 성수기여서 이런 방식의 일이 가능하다.

그동안 그의 농사 규모는 혼자 꾸리기 만만찮은 4천900㎡로 확대됐다.

시설도 변변히 갖추지 못한 채 30여㎡에서 시작한 회사는 460㎡로 커졌고, 연간 매출이 5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다.

직원도 5명으로 늘었다.

[도전하는 청춘] ⑨ 농산물 초코볼 만드는 전직 호텔 셰프 박준우씨
초코볼을 만드는 농산물 원료도 아로니아에서 고구마, 딸기 등으로 확대했다.

4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건조 딸기도 개발했다.

이들 제품은 어린이 간식용으로 인기가 있다.

주문자 위탁생산(OEM)도 도입했다.

농산물 유통업체의 주문을 받아 그 업체의 이름으로 초코볼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박 대표가 성공적으로 농촌에 정착한 데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 옥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소규모 농산가공 창업 사업' 지원을 받고, 농림축산식품부의 창업농 지원도 이어졌다.

농업진흥청, 중소기업벤처부의 공모사업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충북도농업기술원과 유산균 활용 아로니아 발효액 제조방법 특허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6차 산업 인증까지 받았다.

이 과정에서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만났다.

그는 이달 중순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예비신부는 충북 농촌융복합산업지원센터에서 농산물가공 업체의 유통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예비 신부가 6차산업에 필요한 농산물 가공품 유통 분야에서 나보다 훨씬 더 전문가"라며 "재작년 6차산업 인증을 준비할 때 주위 분들의 소개로 만나 결혼까지 하는 행운을 잡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초코볼을 오프라인 중심으로 판매하던 탓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직원들의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생산시설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판매망을 새로 구축하고, OEM을 늘리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최근에는 생활용품 유통업체인 다이소에 초코볼을 납품하고 있다.

[도전하는 청춘] ⑨ 농산물 초코볼 만드는 전직 호텔 셰프 박준우씨
그는 자신의 성공만큼이나 청년들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 첫걸음으로 옥천에서 묘목, 축산업 등을 하는 또래 청년들과 힘을 모아 영농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조합을 통해 상시 판매장 운영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그는 "농촌에 정착한 청년들이 힘을 모으기 위해 법인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며 "청년들의 상생 협력 모델을 구축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