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어제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잠정 보류했다. “여론 수렴 후 결정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32조603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세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총 19.3원 올렸지만 적자는 전년(5조846억원)보다 456.7% 폭증했다. 지난해 구입한 전력 구입 평균 단가가 1년 만에 62.7% 불어나 ㎾h당 95.35원에서 155.17원으로 급등했지만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환수가 어려운 미수금이 9조원 가까운 규모로 커졌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하루 이자 부담만 해도 각각 38억원, 13억원 이상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요금 인상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은 부차적인 문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도 당정협의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당정은 한전과 가스공사의 누적 적자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단계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론 수렴을 좀 더 해서 추후 (인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기·가스요금이라는 경제 문제를 여론으로 풀겠다는 건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고 국민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청구서를 끌어안은 정부와 여당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요금을 제때 현실화하지 않으면 에너지시장 구조를 왜곡하고 손실만 키울 뿐이다. 민생 경제가 엄중하긴 해도 점진적인 인상 외에는 답이 없다. 미룰수록 오히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