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고친' 국무회의 5천자 원고로 '정면 돌파'…"과거에 발목 잡혀선 안돼"
'미래 강조' 처칠 어록 인용하고 박정희·DJ 사례도 언급하며 설득 '진력'
"반일로 정치적 이득 세력 존재"…'독도·위안부' 등 野 문제제기엔 언급 없어
尹 "현명한 국민 믿어"…최장 23분 생중계로 韓日관계개선 설득(종합)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역대 최장'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23분간 모두발언을 이어갔다.

모두발언은 TV로 생중계됐다.

글자 수로는 공백을 제외하고 5천700여자(원고지 기준 52매)에 달했다.

통상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짧게는 5분,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임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긴 모두발언이었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마련 이후로 한일정상회담을 가지는 등 한일관계 개선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거세지는 야권 공세와 더불어 국민 여론도 좀처럼 호의적이지 않자 '대국민 설득전'을 통해 국면 돌파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전날 밤까지 참모들과 수차례 회의하고, 이날 새벽에도 본인이 손수 원고를 고쳤다"고 전했다.

회의 발언 형식임에도 사실상 연설문 수준으로 공을 들였다고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 대상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야권이 현 정부를 향해 '친일 프레임'을 내세우고 이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녹여냈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의 80% 이상을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할애했다.

다만, 독도 영유권·위안부 합의안·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가 한일 정상 간 논의됐다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 말미에는 근로시간 유연화와 관련해서도 직접 설명에 나섰다.

'주 최대 69시간' 표현으로 촉발된 초기 혼선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尹 "현명한 국민 믿어"…최장 23분 생중계로 韓日관계개선 설득(종합)
◇ "과거에 발목 잡혀선 안 돼"…처칠·박정희·DJ 인용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어록으로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그간 한일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면서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며 "저는 현명한 우리 국민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 사례를 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도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적으로 맞서다 전후 전격적으로 화해했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라며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이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연설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굴욕적이고 매국적인 외교라는 극렬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박 대통령은 '피해 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부터 집어먹는 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지적했다"고 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결단 덕분에 삼성·현대·LG·포스코와 같은 기업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방문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천 5백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제3자 변제' 방식이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의 합의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이라고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 있다"며 "역대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합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尹 "현명한 국민 믿어"…최장 23분 생중계로 韓日관계개선 설득(종합)
◇ "日과 경제 시너지"…근로시간 유연화엔 "국민 의견 청취"
윤 대통령은 "양국 관계 개선에 따라 안보·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최근 발표한 경기 용인의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유치하는 방안도 소개했다.

이 밖에 액화천연가스(LNG) 분야 협력 등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수주 시장 공동 진출 기회를 차례로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산 제품 전반의 일본 시장 진출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한국의) 내수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은 경제규모 세계 3위의 시장"이라며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협력 분야 대화 채널 신설, 양자 우주 바이오 공동연구 지원, R&D(연구개발)와 스타트업 공동펀드 조성 등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발언 막바지에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저는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지만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의 설계에 있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