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으로 재탄생한 '정년이', 원작 웹툰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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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서사·러브라인 압축해 그대로 담아…극중극 순서 뒤집고 女→男 배역도
인기 웹툰 '정년이'가 창극으로 재탄생했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이 창극으로 만들어져 이례적으로 국립극장의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일찌감치 전석 매진되기도 했다.
직접 본 창극 '정년이'는 웹툰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았다.
원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서사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주변 인물 이야기는 과감하게 잘라내고 극중극 순서도 뒤집었다.
원작의 여성 캐릭터를 남자 배역으로 바꾸기도 했다.
빠르게 압축하면서 생긴 서사의 빈자리는 생생한 소리와 연기로 채워 넣어 창극만의 맛을 살렸다.
화제의 웹툰 국립창극단을 만나다 | 국립창극단 '정년이'
◇ 110분 안에 압축해 담아낸 여성서사…동성 러브라인도 그대로
창극 '정년이'는 여성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원작 웹툰 속 여성 서사를 압축적으로 구현했다.
주인공 정년이가 매란국극단에 들어가 연기와 소리를 익히며 성장하는 과정, 국극단에서 나오게 되는 두 차례의 고비 등을 짧게나마 모두 다뤘다.
성장 기점인 '춘향전', '자명고', '쌍탑전설' 3편의 무대도 극중극으로 올렸다.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고도 국극을 포기하지 못하는 정년이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긴 대사가 그대로 반영됐다.
정년이가 "국극 마치고 박수 소리 들으믄 말이에요.
컴컴혀서 뵈지도 않던 관중석이 다 보여요.
(…) 엄니, 나는 다시 눈 감고 살긴 글렀어야. 목이 부러지믄 군무를 하고 다리가 부러지믄 촛대를 설 거요"라고 말하는 대사는 무대 위에서 더 큰 울림을 자아낸다.
정년이와 그의 첫 번째 팬인 권부용 간 동성 러브라인도 가감 없이 담겼다.
부용이가 결혼 소식을 전할 때 정년이의 상심을 노래로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아예 "나의 왕자, 나의 사랑"이라는 대사를 통해 둘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 '쌍탑전설' 대신 '자명고'로 마무리…女→男 바뀐 패트리샤 배역
창극으로 옮기면서 바뀐 부분들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사달·아사녀를 다룬 '쌍탑전설'과 낙랑공주·호동왕자 이야기인 '자명고'의 순서를 바꿔 극중극 '자명고'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원작에서는 정년이가 '자명고'에서 군졸 역할을 맡았지만, 창극에서는 호동왕자 역할을 한다.
작가도 권부용으로 설정하고, 아예 무대에 극작가로 올려세웠다.
이 시대에 새로운 왕자가 되는 여자들의 성장·사랑 이야기를 그린 '정년이'의 주제 의식에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가 좀 더 어울렸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웹툰으로는 2019년 4월부터 2022년 5월까지 3년에 걸쳐 연재된 총 137화짜리 긴 이야기를 110분짜리 창극 무대 안에 밀어 넣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우선 주변 인물들의 서사는 대거 축약됐다.
남장여자 고사장이나 라이벌 허영서의 사연은 판소리 형식의 독백으로 축약해 전달하고, 당대의 여성국극 스타인 문옥경·서혜랑 이야기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무대 위를 달음질치는 정년이를 따라 전체적인 서사가 군무, 소리와 버무려져 빠르게 진행된다.
웹툰에서 인기 여가수로 나오는 패트리샤 역할을 창극에서는 남자 배우가 맡았다.
굳이 여성서사 작품에서 여성 역할을 남자 배우에게 줄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창극에서는 이 배역을 중성적인 캐릭터이자 감초 같은 존재로 표현했다.
◇ 원작 팬에게는 입체적인 감동…'소리'에 관객석 추임새 더해져
원작 웹툰 팬이라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국극의 소리와 연기를 직접 보고 듣는다는 즐거움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이가 어머니 채공선과 함께 '추월만정'을 부르는 대목은 판소리 하나만으로 어둡고 텅 빈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원작을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장면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웹툰에서 '자명고' 군졸 연기를 위해 역할 모델을 찾아다니던 정년이가 여군들을 보고 영감을 얻는데, 창극에서는 이 내용이 빠진 대신에 장터에 짧게 상이군인의 경례를 받는 여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창극 특유의 관객석 추임새도 극을 풍부하게 만든다.
기침 소리도 내기 어려운 뮤지컬과는 달리 창극에서는 배우들이 소리를 할 때마다 관객들이 "잘한다", "그렇지" 같이 호응하며 분위기를 살린다.
창극 '정년이'는 17일 개막했으며, 29일까지 공연한다.
/연합뉴스
인기 웹툰 '정년이'가 창극으로 재탄생했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이 창극으로 만들어져 이례적으로 국립극장의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일찌감치 전석 매진되기도 했다.
직접 본 창극 '정년이'는 웹툰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았다.
원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서사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주변 인물 이야기는 과감하게 잘라내고 극중극 순서도 뒤집었다.
원작의 여성 캐릭터를 남자 배역으로 바꾸기도 했다.
빠르게 압축하면서 생긴 서사의 빈자리는 생생한 소리와 연기로 채워 넣어 창극만의 맛을 살렸다.
◇ 110분 안에 압축해 담아낸 여성서사…동성 러브라인도 그대로
창극 '정년이'는 여성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원작 웹툰 속 여성 서사를 압축적으로 구현했다.
주인공 정년이가 매란국극단에 들어가 연기와 소리를 익히며 성장하는 과정, 국극단에서 나오게 되는 두 차례의 고비 등을 짧게나마 모두 다뤘다.
성장 기점인 '춘향전', '자명고', '쌍탑전설' 3편의 무대도 극중극으로 올렸다.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고도 국극을 포기하지 못하는 정년이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긴 대사가 그대로 반영됐다.
정년이가 "국극 마치고 박수 소리 들으믄 말이에요.
컴컴혀서 뵈지도 않던 관중석이 다 보여요.
(…) 엄니, 나는 다시 눈 감고 살긴 글렀어야. 목이 부러지믄 군무를 하고 다리가 부러지믄 촛대를 설 거요"라고 말하는 대사는 무대 위에서 더 큰 울림을 자아낸다.
정년이와 그의 첫 번째 팬인 권부용 간 동성 러브라인도 가감 없이 담겼다.
부용이가 결혼 소식을 전할 때 정년이의 상심을 노래로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아예 "나의 왕자, 나의 사랑"이라는 대사를 통해 둘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 '쌍탑전설' 대신 '자명고'로 마무리…女→男 바뀐 패트리샤 배역
창극으로 옮기면서 바뀐 부분들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사달·아사녀를 다룬 '쌍탑전설'과 낙랑공주·호동왕자 이야기인 '자명고'의 순서를 바꿔 극중극 '자명고'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원작에서는 정년이가 '자명고'에서 군졸 역할을 맡았지만, 창극에서는 호동왕자 역할을 한다.
작가도 권부용으로 설정하고, 아예 무대에 극작가로 올려세웠다.
이 시대에 새로운 왕자가 되는 여자들의 성장·사랑 이야기를 그린 '정년이'의 주제 의식에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가 좀 더 어울렸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웹툰으로는 2019년 4월부터 2022년 5월까지 3년에 걸쳐 연재된 총 137화짜리 긴 이야기를 110분짜리 창극 무대 안에 밀어 넣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우선 주변 인물들의 서사는 대거 축약됐다.
남장여자 고사장이나 라이벌 허영서의 사연은 판소리 형식의 독백으로 축약해 전달하고, 당대의 여성국극 스타인 문옥경·서혜랑 이야기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무대 위를 달음질치는 정년이를 따라 전체적인 서사가 군무, 소리와 버무려져 빠르게 진행된다.
웹툰에서 인기 여가수로 나오는 패트리샤 역할을 창극에서는 남자 배우가 맡았다.
굳이 여성서사 작품에서 여성 역할을 남자 배우에게 줄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창극에서는 이 배역을 중성적인 캐릭터이자 감초 같은 존재로 표현했다.
◇ 원작 팬에게는 입체적인 감동…'소리'에 관객석 추임새 더해져
원작 웹툰 팬이라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국극의 소리와 연기를 직접 보고 듣는다는 즐거움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이가 어머니 채공선과 함께 '추월만정'을 부르는 대목은 판소리 하나만으로 어둡고 텅 빈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원작을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장면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웹툰에서 '자명고' 군졸 연기를 위해 역할 모델을 찾아다니던 정년이가 여군들을 보고 영감을 얻는데, 창극에서는 이 내용이 빠진 대신에 장터에 짧게 상이군인의 경례를 받는 여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창극 특유의 관객석 추임새도 극을 풍부하게 만든다.
기침 소리도 내기 어려운 뮤지컬과는 달리 창극에서는 배우들이 소리를 할 때마다 관객들이 "잘한다", "그렇지" 같이 호응하며 분위기를 살린다.
창극 '정년이'는 17일 개막했으며, 29일까지 공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