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장관 지낸 정치인 출신 첫 취임…"소통·공정한 지원·문예기금 확충"
올해 예술위 설립 50주년…통합 플랫폼 제작·범국민 후원 캠페인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창작물에 이념 잣대 맞지 않아"
"예술은 이념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 창작물에 정치적 이념의 잣대를 대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원회) 정병국(65) 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 사태는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초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예술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관여한 기관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후 공정한 지원을 통한 신뢰 회복 노력을 지속해왔다.

올해 1월 제8대 예술위원장에 취임한 정 위원장은 5선(16~20대) 국회의원으로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며 문화예술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다.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은 예술위원회에 정치인 출신 위원장이 취임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정부, 관 입김에서 벗어나 순수예술 분야에 안정적인 지원을 하려면 현재 1천억원이 안 되는 문화예술진흥기금 확충이 필요하다"며 올해는 1천20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예술위 후원 캠페인인 '예술나무운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활성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정책 고객인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오는 23일까지 14차례에 걸쳐 현장 업무보고를 진행하고 있다.

본사가 있는 전남 나주와 서울을 직접 운전해 오가는 그는 예술가의집에 있는 집무실 문턱도 낮춰 예술인들과 수시로 대화한다.

정 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라고 강조하며 "문화산업에 비해 순수예술에 대한 예산 구조가 열악하다.

지원 기관이니 예산을 많이 만들어 더 지원해주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창작물에 이념 잣대 맞지 않아"
다음은 정병국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정치인과 행정가 이력을 가진 분으로서 취임한 소감은.
▲ 국회에 있을 때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관의 관여를 최소화하는 구조로 만들려 노력한 사람으로서 정치인이 예술위원을 맡는 데 대한 고민이 있었다.

많은 분이 찾아와 현안 해결을 요청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생각했다.

11년간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을 한 국회의원으로는 비판적 시각에서, 문체부 장관으로는 정책 집행 입장에서 해본 양쪽 경험을 되돌아보며 고심 끝에 결정했다.

-- 14차례에 걸쳐 업무보고를 진행해 무척 바쁜 기관장으로 통한다.

현장에서 청취한 현안은.
▲ 중요한 건 예산 문제이고, 다음은 한정된 예산을 얼마나 공정한 심사를 통해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장르마다 직접 지원과 공간 확보 같은 간접 지원 중 어느 게 더 효과적인지에 대한 차이가 있다.

예술인들의 의견을 들어 이런 부분을 조화롭게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 예술위는 문학, 시각·공연·전통·다원예술 등 기초예술 분야 생태계가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올해 예산이 약 4천억원인데, 분야별로 어떻게 운용하는지.
▲ 올해 기준 전체 사업비는 3천846억원으로 예술창작역량강화 사업이 1천34억원(26.9%), 지역문화예술진흥사업이 104억원(2.7%), 통합문화이용권(문화누리카드·2천102억원)을 포함한 예술향유기회확대 사업이 2천708억원(70.4%)을 차지한다.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이 절반을 차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위탁 사업도 있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예산은 1천억원 남짓이다.

적은 예산으로 어떤 사업을 계획해 지원해야 효율이 극대화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예술현장은 공모 방식의 창작지원사업이 더 확대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술위가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문예기금을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

-- 전 정부에서도 문예기금 확대 방안 등의 논의가 진행됐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기금 확충을 위한 복안이 있나.

▲ 문예기금을 영화관과 박물관 등 입장 티켓에 부과할 때는 2004년 5천억원대까지 갔다.

그러나 이 방식이 위헌 결정을 받아 모금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지난해 적립금은 900억원대였다.

결국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면 제약을 받고 정부 기조에 따라 바뀌게 된다.

문예기금 사업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이려면 1조원의 기금이 필요하다.

경영전략개선 소위원회를 운영해 올해는 1천20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예술후원활성화 소위원회도 만들어 '예술나무운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활성화하려 한다.

10월 11일이 예술위 창립일이어서 국민을 초대한 음악회를 개최해 캠페인 선포식을 할 것이다.

또 예술위 자체 사업으로 골프장을 운영하는데, 수익 개선이 필요해 TF를 만들고 컨설팅을 받으려 한다.

-- 또 다른 과제는 공정한 지원이다.

자유로운 예술 창작 환경 조성을 위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나.

▲ 예술은 이념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 창작물에 정치적 이념의 잣대를 대는 건 맞지 않는다.

창작하는 분들을 굳이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면 진취적이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분들이니 진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어도 그 판단은 국민, 관객이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이념 편향적인 작품에 대해 우리 국민은 충분히 정화 능력이 있다.

그것대로 흘러가는 게 시대적인 조류다.

블랙리스트라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지만, 그걸 또 반복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예술인들이 무한하게 창작하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니 그런 의지를 갖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창작물에 이념 잣대 맞지 않아"
-- 정부는 예술위 설립 50주년을 맞은 올해를 K-아트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 시대이던 1973년에 선배 세대가 문화예술진흥을 하겠다고 초석을 다진 건 놀라운 일이다.

기초예술의 씨를 뿌리고 기반을 다졌기에 오늘날 K-컬처가 주목받으며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됐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 3만3천 달러 시대에 선진국 반열의 문화 강국 소리를 들으면서 순수예술 투자 예산 규모가 적정한지부터 출발하고 있다.

새로운 50년을 위해선 예술위 위상 재정립과 지원 메커니즘 진단을 해 미래를 설계하는 쪽으로 준비할 것이다.

통상적인 백서를 만들기보다 50년간 지원해 생산된 창작품을 모으는 아카이빙 작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예술위가 예술인, 일반 국민과 소통하던 사업별 19개 플랫폼을 하나의 통합 플랫폼으로 제작해 이 자체가 창작물을 일목요연하게 보는 마켓이 되도록 할 것이다.

영어 버전도 만들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원활하게 콘택트해 공동 작업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다.

K-아트가 세계로 나가는 아웃바운드뿐 아니라 인바운드도 겨냥하는 기반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세계적인 인기인 K-콘텐츠처럼 K-아트가 해외에서 성장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 무용이나 연극은 일회성으로, 영화처럼 찍어 동시에 확대할 수 없으니 시장이 협소하다.

다만, 미술은 순수예술이면서 시장을 형성한다.

지난해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가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와 공동 개최했듯이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아트페어를 찾은 컬렉터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트페어 기간을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고자 키아프를 준비하는 팀과 협업해 한국에 온 분들에게 미술관과 갤러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북을 만들려 한다.

아트페어가 강남에서 열리고 갤러리는 주로 강북에 있으니 셔틀을 운영하는 등 할 수 있는 걸 해보려 한다.

올해는 미처 못했지만 내년에는 그 시기에 맞춰 연대해보려 한다.

-- 예술위 운영 극장(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예술극장 총 4개 공연장)과 미술관(아르코미술관·인사미술공간)이 있다.

극장의 경우 시설 노후화로 몇차례 공연에서 문제가 발생해 리모델링이 필요한 상황인데.
▲ 예술위 설립 10년 뒤 완공한 시설이 아르코극장과 미술관이다.

40년이 지나 노후화돼 비도 새고 여러 균열이 났는데, 3년 전부터 보수 예산을 요청했지만 반영이 안 된다.

지금도 연극과 무용 공연을 주로 하는 아르코 대극장은 누수로 인해 망가진 무대 장치를 부분 리모델링하느라 몇개월간 휴관 중이다.

절대적으로 공간이 부족한 상황으로, 대관 공모를 하면 당선율이 20% 남짓이고 80%는 떨어진다.

이 작품들이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대학로에 두 개 정도 소극장을 장기 임대해 낮은 대관료로 운영해보려 한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융복합 공연을 위해 4개 공연장 중 하나를 최첨단 기술로 세팅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 앞으로 어떻게 역할을 해나갈지 계획은.
▲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다.

좋은 정책이 고객 입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봐야 한다.

매년 새롭게 다음 연도 사업 계획을 짜기 전엔 업무보고를 하려 한다.

또 예술가의집 1층에 있던 '예술나무 라운지'를 좀 더 넓은 2층으로 넓힌다.

1층 라운지는 청년들이 워크숍을 하는 공간으로 제공한다.

2층에 라운지가 만들어지면 요일을 정해 최소 2~3시간은 현장에 나가 대화하려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