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병원 투약 오류로 영아 잃은 부모 법정서 눈물의 증인 신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입원 치료를 받다 간호사들의 투약 사고와 고의 은폐로 사망에 이르게 된 생후 12개월 영아의 부모가 법정에서 딸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피고인들에 대한 선처 없는 엄벌을 촉구했다.

"오늘 행복하게 보내자며 찍었던 가족사진 더는 못 찍어"
제주지법 형사2부(진재경 부장판사)는 16일 업무상 과실과 유기치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제주대학교병원 간호사 진모씨 등 3명에 대한 4차 공판에서 피해 영아 모친 A씨와 부친 B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진씨는 지난해 3월 11일 코로나19로 입원 치료 중이던 12개월 영아에게 담당 의사 처방과 다른 방식으로 약물을 투약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담당 의사는 호흡곤란 증상이 있던 이 영아에게 '에피네프린'이란 약물 5㎎을 희석한 후 네뷸라이저(연무식 흡입기)를 통해 투약하라고 처방했다.

하지만 진씨는 이 약물 5㎎을 정맥주사로 놓았다.

에피네프린은 기관지 확장과 심정지 시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킬 때 사용하는 약물이다.

진씨는 또 같은 팀의 선임인 간호사 강모씨와 투약 직후 피해자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잘못을 알았지만 이를 담당의사에게 보고하지 않아 담당의사가 피해자에게 정확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게한 혐의를 받는다.

수간호사인 양모씨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을 인지하고도 담당의사 등에게 보고하지 않고,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진씨와 강씨에게 투약사고 보고서 작성 등을 하지 않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강씨는 소속팀 간호사 진씨에게 특이사항을 전달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진씨·양씨와 공모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약물 처방 내용, 처치 등 의료 사고와 관련한 기록을 여러 차례에 걸쳐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약물을 과다 투여받은 영아는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투여 이튿날인 3월 12일 숨졌다.

이날 증인석에 앉은 숨진 영아의 모친 A씨는 딸이 투약 사고 당시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본 날을 회상하며 울분을 토했다.

A씨는 "큰 결심 끝에 지난해 11월 22일에야 사고 당시 CCTV를 보게 됐다"며 "영상을 보면 딸이 코로나19 전담 병동으로 옮겨지자마자 간호사는 잘못된 방식으로 투약한 사실을 인지하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주저앉았고, 주변 간호사들도 펄쩍 뛰는 등 난리가 났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간호사들이 잘못 투약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를 몰랐던 나 자신이 너무 미웠고 결국 충격에 쓰러져 입원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저는 마지막으로 딸의 몸을 닦아줄 수도 없었고, 기저귀를 갈아줄 수도, 수의를 입혀줄 수도 없었다"며 "딸은 차가운 비닐봉지에 싸여 관에 옮겨졌다.

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재판장님의 올바른 판단으로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악행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고, 다시는 의료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선처 없는 엄벌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오늘 행복하게 보내자며 찍었던 가족사진 더는 못 찍어"
부친 B씨는 딸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난 이후 가족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B씨는 "아내는 강제로 육아휴직이 종료돼 1달 이내로 복직해야 했고, 결국 6년간 정을 붙였던 회사를 그만뒀다"며 "죽은 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은 계속해서 언니의 빈자리를 찾고 있지만, 모두 지나갈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B씨는 "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닐 때도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자며 같은 동네에 사는 딸의 큰고모와 작은고모, 친조부모, 외조부모와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을 딸이 죽은 후 더는 찍을 수 없게 됐다"며 "그 사실이 저를 매우 힘들게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제주대병원은 제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고, 도민이 가장 많이 찾는 병원인데 이번 사건이 일어났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도 신뢰를 주지 못했다"며 "앞으로 제주대병원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고인 측은 재판 과정에서 약물을 잘못 투약하고 이를 은폐한 행위 등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으나, 담당의사 보고 누락과 관련 기록 삭제 등이 피해자 사망과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들에 대한 5차 공판은 오는 4월 27일 오후 4시 30분에 열릴 예정이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