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경내서 고려시대 유물 발견…입증 위해 발굴 조사할 것"
1·2심 모두 '왜구반출' 판단했지만, 2심서는 "日사찰 취득시효 완성돼"
불상소유권 패소 부석사 상고이유서 제출…"시효취득 판례 오해"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 충남 서산 부석사가 약탈에 의한 무단 점유는 시효취득에 따른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5일 부석사 측 법률대리인인 김병구 변호사에 따르면 부석사는 지난 13일 '시효취득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끼친 위법이 있다'는 취지의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지난달 10일 부석사의 불상 인도 청구를 기각한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지 31일 만이다.

부석사 측은 항소심 법원이 '왜구가 약탈해 불상을 불법 반출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증거는 있지만,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인 일본 민법의 취득시효 규정을 적용해 일본 간논지(觀音寺)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것과 관련, 일본 판례를 잘못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부석사 측은 "항소심 판결에서 인용한 일본 판례는 매매 물건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임을 알고 있는 '악의의 매수인'의 '자주 점유'를 인정한 것"이라며 "왜구에 의한 약탈은 '무단 점유'로서 자주 점유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매매에 관한 사안과 같이 본 항소심 판단은 일본국 판례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의 부석사와 현재 부석사의 동일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판단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불상소유권 패소 부석사 상고이유서 제출…"시효취득 판례 오해"
부석사 측은 "부석사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 초·중기에도 있었음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당시에는 예산 수덕사와 공주 갑사 등 삼국시대부터 전승돼온 사찰들 대다수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며 "조선 초기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석사가 기재돼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고려 말 왜구의 침략으로 서주 부석사의 인적·물적 요소가 소실됐다면 지금 부석사와 동일한 권리주체가 아니라는 것인데, 이는 정부청사가 전쟁 등으로 멸실하면 국가도 소멸한다는 논리와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부석사 측은 "2017년 불교문화재연구소 조사를 통해 서산 부석사 경내에서 고려시대 기와와 청자편 등 유물이 발견됐다"면서 "구체적인 증명력을 갖추기 위해 서산시가 발굴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유권 다툼 대상인 높이 50.5㎝·무게 38.6㎏의 불상은 한국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일본 간논지에서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현재는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서산 부석사는 '서주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불상 결연문을 토대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월 26일 1심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 측 손을 들어줬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이 '불상과 결연문의 진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항소해 지난달 1일 6년 만에 마무리된 2심에서 대전고법 민사1부(박선준 부장판사)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330년께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부석사가 이 사건 불상을 제작했다는 사실관계는 인정된다"면서도 "현재 서산에 있는 부석사가 고려시대 부석사와 같은 종교단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1527년 조선에서 불상을 양도받았다는 일본 간논지 측 주장 역시 확인하기 어려우나 1953년부터 불상이 도난당하기 전인 2012년까지 6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불상이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된 만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불상소유권 패소 부석사 상고이유서 제출…"시효취득 판례 오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