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몸값전쟁…이제는 직무 아닌 '스킬' 기반 인사
우리는 '직무'가 지배하는 세상에 산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직무라는 이름으로 잘게 나뉜다. 구성원은 무슨 직무를 하느냐에 따라 조직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정해진다. 맡은 직무에 따라 마주하는 업무환경은 제각각이다. 호칭도 맡은 직무에 따라 달라진다. 우수한 직원으로 인정받으려면 직무에서 기대하는 성과를 내야한다. 자신이 하는 직무가 다른 직무에 비해 특별히 어렵거나 중요하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기도 한다.

직무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만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로 새로운 업무와 일하는 방식이 부상하는 것은 직무 지상주의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일부 조직에서는 전통적인 직무 중심 인사를 벗어나고 있다. 애자일 조직으로 전환하거나 프로젝트 중심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에서는 일하는 방식 변화에 맞춰 일을 '스킬 단위'로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직무 자체가 아닌 스킬을 기준으로 업무를 정의하고 인력배치, 성과평가, 보상 등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이다.

직무 중심 인사에서는 전통적으로 기능이나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 직무를 구분한다. 일의 기능이나 필요요건이 유사하면 하나의 직무로 정의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직무로 구분하는 식이다. 직무 중심 인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역할을 가미한 방식으로 이동한다. 어떤 직무를 담당하는지와 더불어 맡은 일이 가지는 역할의 크기, 즉 성과책임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어떤 직무나 역할을 맡느냐를 강조한 인재관리에서 나아가 스킬에 정렬한 인재관리가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일하는 환경은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하나의 직무를 오랜 기간 꾸준히 담당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직무 영역을 넘나드는 업무를 수시로 행하게 될 것이라 예상된다. 이런 일하는 방식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직무에 국한된 스킬이 아닌 좀 더 포괄적인 직무에 필요한 스킬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스킬 중심 인력운영 변화는 실리콘밸리에서 엿볼 수 있다. 구글은 변화무쌍한 업무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자 서비스와 기능, 지역 등이 복잡하게 얽힌 매트릭스 조직을 운영한다. 매트릭스 조직 안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구성원들은 수시로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구글 직원들은 하나의 직무에 국한된 업무를 담당하기 보다는 여러 일과 프로젝트를 광범위하게 넘나든다. 구글은 직무체계를 기능별로 분류하고 기능 안에 세부 클래스를 나눈다. 직원들은 클래스 중 하나를 담당하는데 실제로는 정해진 클래스 내에 직무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기능과 클래스를 넘나드는 횡단적 일을 묶어 직무를 자유롭게 생성하고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운영방식을 통해 매트릭스 조직과 여러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기술 변화가 빠른 업무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한다.

페이스북은 직무와 유사한 개념의 필드오브워크(Field of Work)를 운영한다. 다만 운영방식에 있어 전통적인 직무관리와 차이를 보인다. 한 명의 직원에게 하나의 필드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담당하는 역할이나 일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개의 필드를 해시태그 달 수 있다. 정형화된 직무체계 안에서만 일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 담당하는 일에 맞춰 다양한 업무 영역을 태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피플 애널리틱스 매니저(People Analytics Manager) 업무를 담당한다면 #Data #Analytics #People #Recruiting #Research 등의 태그를 붙인다. 실제 직원들이 담당하는 일에는 각 필드간 교차하는 점을 고려한 방식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사례는 일의 정의를 직무가 아니라 스킬 중심으로 바라보는 흐름을 보여준다. 하나의 업무영역에 구성원을 묶어 놓기보다는, 그들이 지닌 스킬을 바탕으로 다양한 업무나 여러 직무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일을 수행하게 한다. 구성원이 보유한 스킬을 중심으로 인력운영 유연성을 높여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인재전략이다.

스킬 중심 인력운영의 부상은 지금까지의 인사전략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펼쳐질 일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에 따른 기술적 변화와 주력해야 할 스킬셋을 파악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미래에 요구되는 스킬과 현재 구성원이 지닌 스킬 간의 격차를 파악해 이를 줄이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힘쓰고 있는 리스킬링 과 업스킬링도 스킬갭을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킬갭을 메우는데 있어 직원의 역량을 재편하고 향상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요한 스킬을 지난 인재를 외부에서 확보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격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몇 해전 크게 이슈가 된 IT개발자 몸값전쟁도 스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경영환경이 반영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명확한 전략없이 무분별한 퍼주기식 접근은 곤란하다. 전체적인 인사 방향성을 흩뜨리고 직원간의 형평성을 해친다. 스킬 중심으로 인사 인프라를 정비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인사전략과 연결한 보상정책을 가다듬는 필요하다.

IBM은 자신들에게 필요로 하는 스킬을 지닌 인재에 높은 급여를 지급하는 보상정책을 펼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스킬과 필요하지 않은 스킬이 무엇인지를 구분하고 이를 보상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필요하지 않은 스킬을 가진 직원의 급여는 인상하지 않는다. 쇠퇴하는 기존 스킬을 보유한 인력에게는 떠오르는 스킬을 갖추도록 권유한다.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여 과거 기술에 머물러 있는 인력의 리스킬링을 유도한다. 미래에 필요한 스킬을 보상과 교육훈련에 연계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LG CNS는 직원들의 연봉 인상률을 산정할 때 기술역량 레벨을 반영한다. 기술역량 레벨은 기술인증시험, 산업역량, 공통역량 등을 종합해 1부터 5레벨까지 책정한다. 연봉 인상률은 직급과 무관하게 기술역량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 기술역량이 뛰어난 1년차도 연봉이 10% 이상 오를 수 있는 반면, 25년차 부장의 연봉은 동결될 수 있다. 디지털 혁신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이 성장할 유일한 자산은 기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직무 중심 인재관리를 지향했다. 보상에 있어서는 성과를 내는 인력에게 보다 높은 보상을 한다는 원칙을 중시했다.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업무와 일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다양한 형태로 펼쳐질 것이다. 새로운 일은 기존에 주목받지 못한 스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새로운 업무방식은 다양한 스킬을 융합한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시장에서 떠오르는 스킬을 확보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환경이다. 이제 직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난 스킬 기반 인재관리를 고민할 때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 HR컨설팅 서비스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