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이고 감각적 화풍…"그녀는 작은 태양이자, 큐비즘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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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마리 로랑생의 '키스'
20세기 입체주의 유일한 여성 화가
피카소의 화실 드나들면서 교류
남성 작가의 표현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차별화
여성 특유의 색채와 온화함 담아
프랑스 출신 코코 샤넬 초상화 그렸다가
관능적 모습 강조했단 이유로 거절 당해
죽을 때까지 수정 요구 외면하고 버텨
마리 로랑생의 '키스'
20세기 입체주의 유일한 여성 화가
피카소의 화실 드나들면서 교류
남성 작가의 표현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차별화
여성 특유의 색채와 온화함 담아
프랑스 출신 코코 샤넬 초상화 그렸다가
관능적 모습 강조했단 이유로 거절 당해
죽을 때까지 수정 요구 외면하고 버텨

20세기 초 시각예술 분야에서 창조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은 창작 활동에서 배제됐다. 로랑생은 여성의 창조적 재능을 억압하던 시절인 1902년, 파리의 미술교육기관 아카데미 앙베르에 입학해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곧 앙베르에서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큐비즘)를 창시한 화가 조르주 브라크를 만나 친구가 됐다.

입체주의 이론을 정립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1912년 로랑생의 작품에 관한 첫 번째 평론을 발표하며 이런 찬사를 바쳤다. “그녀는 행복하고, 착하고, 영적이며 많은 재능을 가졌다. 그녀는 작은 태양이고 여성적인 형태의 나 자신이다. (중략) 그녀는 큐비즘의 성모다.” 연인관계인 두 사람은 1907년 피카소의 소개로 만나 약 5년 동안 창조적 협력자로 서로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다리’를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로랑생은 입체주의 남성 화가들과 교류하며 단체전도 열었지만, 놀랍게도 주류 남성 작가의 표현 양식을 따르지 않고 여성적 감성을 강조한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몽마르트르의 뮤즈”라는 남성들의 찬사보다 예술가로서의 동등한 지위와 독립성, 예술적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남성 화가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바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따뜻함, 사랑스러움을 강조하는 화풍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왜 죽은 생선, 양파, 맥주잔을 그려야 합니까? 여자가 훨씬 더 예뻐요”라는 로랑생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두 여성의 키스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로랑생 화풍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눈에도 여성 화가가 그렸다고 느껴질 만큼 주제와 형태, 색채에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 온화함이 가득하다.
파스텔 톤의 파랑, 분홍, 연보라, 회색조의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색감과 흐릿한 윤곽선,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해 두 여성의 정서적 친밀감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비평가들은 로랑생이 개발한 우아하고 세련된 장식화풍을 “섬세한 큐비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샤넬은 “나는 전 세계에 옷을 입혔다. (중략)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도전적이고 영웅적 면모를 가진 강인한 여성이다. 그런데 초상화 속 여성을 보라. 무릎에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앉히고 오른팔을 머리에 기댄 나른한 자세를 취한 채 몽환적 상태로 앉아 있다. 벌거벗은 어깨와 반쯤 드러난 젖가슴은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샤넬이 초상화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지만 로랑생은 그림을 수정하지 않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장했다. 작품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됐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