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금융소비자보호처장 "금융사에 기울어진 운동장 고쳐 소비자 권리 높여야"
“국민의 ‘금융주권’을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8일 퇴임하는 김은경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사진)의 재임 기간에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금융회사의 설명의무 강화, 부당 권유행위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2021년 3월부터 시행됐다. 5대 사모펀드(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헬스케어, 헤리티지)의 불완전판매 논란 관련 분쟁조정 절차도 김 처장이 도맡았다.

금소법은 ‘보호’에 주안점을 둔 나머지 금융상품 가입 시간이 길어지는 등 소비자 불편을 초래한다며 현장에서 혼란과 반발이 적지 않았다. 김 처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뿌리를 굳세게 땅에 박아 밑동이 흔들리지 않는 나무를 자주 떠올렸다”며 “금소법이 깊고 묵직하게 안착되면 어떤 금융환경 변화 속에서도 소비자 보호의 문화가 흔들림 없이 꽃피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면 계약을 기본으로 금소법이 만들어져 비대면 시대를 고려한 일부 보완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처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난해 11월 21일 오후 6시께를 꼽았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이유로 독일 헤리티지펀드 판매사 6곳에 전액 반환을 결정한 순간이다. 2020년 6월부터 모두 12차례 이뤄진 5대 사모펀드 분조위 대장정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 현지 언론보도와 의회가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질의서 등을 직접 찾아 헤리티지펀드 시행사가 2014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였다는 점 등을 확인했다”며 “독일 영국 싱가포르 등 감독당국과 소통했는데 분쟁 조정을 하면서 해외 당국과 연계한 최초 사례”라고 소개했다. 독일 만하임대 법학박사 출신인 김 처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김 처장은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금융약관 점검과 개선에도 힘썼다. 그는 “한국의 약관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법조문 형식이지만 외국에선 줄글이나 만화 형태의 약관도 있다”며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아니라 사업자에게 유리한 금융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교육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성인 중 금융이해력 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소 목표지수에 미달하는 비중이 48%에 달한다. 금감원은 청소년이 금융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신나는 금융여행’ ‘용돈탐험대’ 같은 보드게임 6종과 모바일 웹게임을 개발했다. 고령층 대상의 금융교육도 자녀나 손주가 아니라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교회 집사’ 등이 진행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김 처장은 ‘금융주권’이란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국민의 전반적인 금융 이해도를 높이고, 충분한 설명을 듣고 금융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금융회사가 설명의무 등을 위반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등 그가 지난 3년간 한 활동이 모두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인 김 처장은 다시 강단으로 돌아간다. 그는 “일단 논문을 작성할 계획이다. 이미 주제를 몇 개 스크랩해놨다”며 “교수 신분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 처장은 금감원 내 첫 여성 부원장으로 2020년 3월부터 금소처를 이끌었다. 임기를 모두 마친 금소처장도 그가 처음이다.

글=이인혁/사진=김범준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