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르고 화장하고…사회생활 편견 부딪힌 '탈코르셋'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면접 낙방·회사선 뒷말…"'꾸밈노동' 여전히 강요하는 사회"
"옛날 제 모습이에요.
면접 평가 항목에 외모가 있다면 '하' 받을 것 같지 않아요?"
5년 전 사진 속 조모(28)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스포츠머리에 화장기 없는 민얼굴, 품 넉넉한 티셔츠까지 영락없는 '탈코르셋'(강요되는 외모 가꾸기 등에서 벗어나려는 운동) 여성이었다.
지금 조씨는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다.
출근할 땐 화장도 한다.
취업준비생 시절 외모 때문에 면접에서 낙방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여자답게' 꾸민다고 한다.
2010년대 중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이른바 '탈코 여성'이 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과거 거부했던 여성상에 가깝게 되돌아간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탈코 여성으로 겪는 차별과 편견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탈코를 고민하는 여성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 면접서 "왜 남자머리 했냐", 회사 가면 "동성애자냐"
조씨는 재작년 입사시험 면접관에게서 "왜 남자머리를 했냐"는 말을 들었다.
모자란 스펙이 없다고 자부했지만 면접에서 줄줄이 탈락했었다.
그제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나름대로 타협한다고 스포츠머리에서 쇼트커트까지 길렀는데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러다가 취업 못 하는 것 아닌가' 덜컥 겁이 났어요.
"
조씨는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함께 머리를 여성스럽게 다듬고 면접을 봤다.
합격 통보를 받고는 기쁨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고 떠올렸다.
직장 동료들도 종종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A(32)씨는 입사 4년 차에 긴 머리를 자르고 옷차림을 바꿨다가 탈코에 대한 편견에 부딪혔다.
"처음엔 동료들이 '멋있다', '용기있다'고 해줬어요.
그런데 몇 개월 지나니 메갈이라느니, 동성애자라느니 수군거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엔 '트랜스젠더다', '호르몬을 맞는다더라'까지 나가더라고요.
"
뒷말에 지친 그는 결국 다시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닌다.
A씨는 "자기가 생각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정도까지 공격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며 "화장하지 않는 건 마지막 자존심이다.
반 정도 코르셋을 입은 셈"이라고 했다.
◇ "꾸밈 거부하면 공격…포괄적 차별금지법 필요"
이수정(30)씨는 대학교 때 짧게 자른 머리를 지금도 유지한다.
메이크업용 화장품을 사본 지는 4년이 넘었다.
이씨는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맞추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좀 꾸미고 다니라'는 주변 참견은 여전하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읍소하다시피 한다고 이씨는 전했다.
"그나마 프리랜서라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어요.
하지만 당시 저와 함께 탈코한 지인 대부분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죠. 여성스럽게 꾸미지 않는 여성에 대한 시선을 더는 못 견디겠다면서요.
"
전문가들은 '꾸밈 노동' 강요와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향한 공격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한국 사회는 유독 외모를 중요시하고 페미니즘을 일베와 동일시하는 편견도 있다"며 "짧은 머리가 '메갈'을 상징한다는 오해까지 여성 개인이 감당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짚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규범에 복종하지 않는 개인을 반사회적 존재로 낙인찍는 상황에서 탈코 여성들은 각종 비난과 불이익에 개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외모나 취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제재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허 조사관은 "관련 법률이 없으니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혐오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면접 평가 항목에 외모가 있다면 '하' 받을 것 같지 않아요?"
5년 전 사진 속 조모(28)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스포츠머리에 화장기 없는 민얼굴, 품 넉넉한 티셔츠까지 영락없는 '탈코르셋'(강요되는 외모 가꾸기 등에서 벗어나려는 운동) 여성이었다.
지금 조씨는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다.
출근할 땐 화장도 한다.
취업준비생 시절 외모 때문에 면접에서 낙방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여자답게' 꾸민다고 한다.
2010년대 중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이른바 '탈코 여성'이 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과거 거부했던 여성상에 가깝게 되돌아간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탈코 여성으로 겪는 차별과 편견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탈코를 고민하는 여성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 면접서 "왜 남자머리 했냐", 회사 가면 "동성애자냐"
조씨는 재작년 입사시험 면접관에게서 "왜 남자머리를 했냐"는 말을 들었다.
모자란 스펙이 없다고 자부했지만 면접에서 줄줄이 탈락했었다.
그제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나름대로 타협한다고 스포츠머리에서 쇼트커트까지 길렀는데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러다가 취업 못 하는 것 아닌가' 덜컥 겁이 났어요.
"
조씨는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함께 머리를 여성스럽게 다듬고 면접을 봤다.
합격 통보를 받고는 기쁨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고 떠올렸다.
직장 동료들도 종종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A(32)씨는 입사 4년 차에 긴 머리를 자르고 옷차림을 바꿨다가 탈코에 대한 편견에 부딪혔다.
"처음엔 동료들이 '멋있다', '용기있다'고 해줬어요.
그런데 몇 개월 지나니 메갈이라느니, 동성애자라느니 수군거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엔 '트랜스젠더다', '호르몬을 맞는다더라'까지 나가더라고요.
"
뒷말에 지친 그는 결국 다시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닌다.
A씨는 "자기가 생각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정도까지 공격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며 "화장하지 않는 건 마지막 자존심이다.
반 정도 코르셋을 입은 셈"이라고 했다.
◇ "꾸밈 거부하면 공격…포괄적 차별금지법 필요"
이수정(30)씨는 대학교 때 짧게 자른 머리를 지금도 유지한다.
메이크업용 화장품을 사본 지는 4년이 넘었다.
이씨는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맞추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좀 꾸미고 다니라'는 주변 참견은 여전하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읍소하다시피 한다고 이씨는 전했다.
"그나마 프리랜서라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어요.
하지만 당시 저와 함께 탈코한 지인 대부분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죠. 여성스럽게 꾸미지 않는 여성에 대한 시선을 더는 못 견디겠다면서요.
"
전문가들은 '꾸밈 노동' 강요와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향한 공격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한국 사회는 유독 외모를 중요시하고 페미니즘을 일베와 동일시하는 편견도 있다"며 "짧은 머리가 '메갈'을 상징한다는 오해까지 여성 개인이 감당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짚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규범에 복종하지 않는 개인을 반사회적 존재로 낙인찍는 상황에서 탈코 여성들은 각종 비난과 불이익에 개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외모나 취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제재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허 조사관은 "관련 법률이 없으니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혐오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