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지원 '당근'으로 中과 디커플링 압박…한국의 선택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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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보조금 최대 3.4조원 예상…까다로운 조건에 업계 고심
美, 신청기업에 "안보기여도 설명하라"…군사용 반도체 공급 약속 요구
'지원금 수령=對中견제 동참' 의미…정부관계자 "국가안보 함의도 고려해야" 미국이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라 자국 내 반도체 투자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절차를 공개한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 사이에 낀 한국 기업들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정부에 지원금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은 군사용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과 최대 경쟁자인 중국과의 디커플링(분리)에 협력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보조금에 한도는 없지만, 대부분은 해당 사업의 총 설비투자액의 5∼15%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조금과 대출 등을 포함한 총 지원액은 총 설비투자액의 35%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신청 기업이 민간 투자를 최대한 유치할 것을 주문했다.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170억달러를 투자해 짓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과 관련해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조금은 8억5천만∼25억5천만달러(약 1조1천억∼3조4천억원) 규모다.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지원액은 59억5천만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아직 보조금 신청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까다로운 조건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이 미국의 경제 안보 및 국가 안보 이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법 제정 취지가 안보에 중요한 반도체를 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에서 비롯된 만큼 미국 정부의 이런 입장이 예상 밖은 아니지만 이날 상무부는 투자 기업에 기대하는 바를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상무부는 "반도체는 현대적인 국방 체계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인으로 보안성을 갖춘 설계와 안정적인 공급이 국가 안보에 필수"라며 기업이 제안한 사업이 국방부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관이나 주요 시설에 필요한 반도체를 얼마나 생산하는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상업용 생산, 시험, 패키징 모델을 국가 안보에 필요한 다품종 소량 부품 생산으로 전환(adapt)할 수 있는 사업", "상업용 기술을 국가 안보 임무 지원에 적용할 수 있는 사업"을 원한다고 명시했다.
또 "미국 정부가 반도체 시설을 실험, 전환, 생산, 국가 안보 프로그램과 잠재적 통합 용도로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할 의사가 있는 지원자"를 원한다고 밝혔다.
군사용 반도체 개발과 공급에 협력할 기업에 지원금을 우선하여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적국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전략 시설로 여기는 듯하다.
상무부는 기업이 생산시설을 "적이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에 중요한 민감한 정보를 훔치고 못 쓰게 만들거나 변조, 파괴"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에 중요하거나 수출통제 대상인 기술을 사이버 공격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스파이 활동을 막을 역량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중국의 기술 탈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자재, 장비,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지, 일정 기간 미국 외부의 시설과 인력에서 차단된 상태에서도 시설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지 등 공급망 위험 요인 관리 계획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위기나 코로나19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미국에서 차질 없이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고려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업이 이런 조건을 전부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무부가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어느 정도 협력할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는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미국의 경제 안보 및 국가 안보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는지를 30장 이내로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상무부는 지원금의 혜택이 중국에 돌아가지 않도록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미국의 안보에 우려가 될만한 기술이나 제품과 관련해 중국과의 공동 연구 및 기술 라이선스를 할 경우 지원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했다.
기업은 지원금 지급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지 않기로 상무부와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 지원금으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의 통신·화상 감시장비를 사면 안 된다.
이는 2019년 국방수권법(NDAA)에 연방 지원금으로 이들 기업의 장비를 구매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도체지원법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은 작년 10월 7일 발표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와 같이 봐야 한다.
수출통제가 첨단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과 디커플링(분리)을 강제하는 '채찍'이라면 반도체 지원금은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당근'인 셈이다.
따라서 반도체 지원금 수령은 단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얼마를 받느냐는 경제적 관점을 넘어 한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산업 견제에 협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청 여부는 기업이 결정할 몫이지만 이에 따른 외교·안보 파장이 작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금 신청 여부와 금액 등을 결정할 때 개별 기업의 수익 등 경영적 측면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익 전반과 국가 안보 함의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美, 신청기업에 "안보기여도 설명하라"…군사용 반도체 공급 약속 요구
'지원금 수령=對中견제 동참' 의미…정부관계자 "국가안보 함의도 고려해야" 미국이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라 자국 내 반도체 투자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절차를 공개한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 사이에 낀 한국 기업들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정부에 지원금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은 군사용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과 최대 경쟁자인 중국과의 디커플링(분리)에 협력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보조금에 한도는 없지만, 대부분은 해당 사업의 총 설비투자액의 5∼15%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조금과 대출 등을 포함한 총 지원액은 총 설비투자액의 35%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신청 기업이 민간 투자를 최대한 유치할 것을 주문했다.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170억달러를 투자해 짓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과 관련해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조금은 8억5천만∼25억5천만달러(약 1조1천억∼3조4천억원) 규모다.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지원액은 59억5천만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아직 보조금 신청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까다로운 조건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이 미국의 경제 안보 및 국가 안보 이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법 제정 취지가 안보에 중요한 반도체를 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에서 비롯된 만큼 미국 정부의 이런 입장이 예상 밖은 아니지만 이날 상무부는 투자 기업에 기대하는 바를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상무부는 "반도체는 현대적인 국방 체계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인으로 보안성을 갖춘 설계와 안정적인 공급이 국가 안보에 필수"라며 기업이 제안한 사업이 국방부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관이나 주요 시설에 필요한 반도체를 얼마나 생산하는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상업용 생산, 시험, 패키징 모델을 국가 안보에 필요한 다품종 소량 부품 생산으로 전환(adapt)할 수 있는 사업", "상업용 기술을 국가 안보 임무 지원에 적용할 수 있는 사업"을 원한다고 명시했다.
또 "미국 정부가 반도체 시설을 실험, 전환, 생산, 국가 안보 프로그램과 잠재적 통합 용도로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할 의사가 있는 지원자"를 원한다고 밝혔다.
군사용 반도체 개발과 공급에 협력할 기업에 지원금을 우선하여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적국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전략 시설로 여기는 듯하다.
상무부는 기업이 생산시설을 "적이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에 중요한 민감한 정보를 훔치고 못 쓰게 만들거나 변조, 파괴"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에 중요하거나 수출통제 대상인 기술을 사이버 공격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스파이 활동을 막을 역량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중국의 기술 탈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자재, 장비,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지, 일정 기간 미국 외부의 시설과 인력에서 차단된 상태에서도 시설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지 등 공급망 위험 요인 관리 계획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위기나 코로나19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미국에서 차질 없이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고려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업이 이런 조건을 전부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무부가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어느 정도 협력할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는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미국의 경제 안보 및 국가 안보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는지를 30장 이내로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상무부는 지원금의 혜택이 중국에 돌아가지 않도록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미국의 안보에 우려가 될만한 기술이나 제품과 관련해 중국과의 공동 연구 및 기술 라이선스를 할 경우 지원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했다.
기업은 지원금 지급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지 않기로 상무부와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 지원금으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의 통신·화상 감시장비를 사면 안 된다.
이는 2019년 국방수권법(NDAA)에 연방 지원금으로 이들 기업의 장비를 구매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도체지원법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은 작년 10월 7일 발표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와 같이 봐야 한다.
수출통제가 첨단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과 디커플링(분리)을 강제하는 '채찍'이라면 반도체 지원금은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당근'인 셈이다.
따라서 반도체 지원금 수령은 단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얼마를 받느냐는 경제적 관점을 넘어 한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산업 견제에 협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청 여부는 기업이 결정할 몫이지만 이에 따른 외교·안보 파장이 작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금 신청 여부와 금액 등을 결정할 때 개별 기업의 수익 등 경영적 측면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익 전반과 국가 안보 함의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