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고 싶지만 알아야 할 이야기하는 게 내 소명"
"조진웅·이성민, 평생 몇 번 못 볼 대단한 연기 보여줘"
'대외비' 이원태 감독 "권력 향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이 이야기는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2천∼3천 년 전에도 세상은 이랬으니까요.

"
내달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대외비'는 만년 국회의원 지망생인 해웅(조진웅 분)의 이야기다.

그는 대외비 문서와 행동파 조폭 필도(김무열)를 등에 업고 부산 정치판의 실세 순태(이성민)에 맞선다.

그러나 거대한 악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해웅은 점차 악을 닮아간다.

2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대외비'의 이원택 감독을 만났다.

이 감독은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망 같은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인정하기 싫지만 세상은 그렇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연쇄살인마와 그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작 '악인전'(2019)에서도 인간의 악한 본성을 가감 없이 스크린에 담아냈다.

그는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고 (사회가) 선하게 가고 있는 것도 맞지만 그 밑에 깔린 다른 것들도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부정하고 싶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부조리처럼요.

하기 싫어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게 영화감독으로서 제 소명 같다고 느낍니다.

"
'대외비' 이원태 감독 "권력 향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이 감독은 "권력의 속성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세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순태는 사회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죠.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그가 누군지는 우리가 알 수 없죠. 보이지 않는 권력자 느낌을 주기 위해 더 다크하게(어둡게) 만들고, 구체성은 뺐습니다.

반면 필도는 눈에 보이는 폭력이죠. 권력이라는 건 결국 지배력인데 필도는 그게 물리적 힘에서 나오잖아요.

순태와 대비되는 인물이라 꼭 필요했습니다.

"
해웅에 대해서는 "이 인물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원래는 명분도 있고 나쁜 놈이 아니었잖아요.

해웅을 통해서 욕망의 무서움도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는 게 위기 상황에 놓이는 순간 얼마나 가벼워지는지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해웅이 가진 이중성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해웅은 점점 인간적으로는 타락해가지만, 세속적으로는 올라가잖아요.

악해지면서 욕망은 이뤄지죠."
'대외비' 이원태 감독 "권력 향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영화는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현행 헌법상 처음으로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모두 치러진 해다.

이 감독은 "당시 구체적인 우리나라 정치 지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혹시 매몰될까 봐 일부러 잘 안 봤어요.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한테 중요한 건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몰리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기의식에 차 있었을까'였습니다.

외려 특정 지역의 특정 당 이야기처럼 보일까 봐 공간적 배경을 서울 같은 곳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
'대외비' 이원태 감독 "권력 향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대외비'의 볼거리 중 하나는 세 주연 배우의 연기다.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세 사람은 매 장면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이성민 배우야 너무 잘하시니까.

그 아우라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그걸 연기로 맞받아치고 있는 조진웅, 김무열도 그렇고요.

두 배우는 이전에 작품을 같이 했었지만 이번에 또 다른 모습을 봤어요.

"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해웅과 순태의 국밥집 독대 장면에 대해서는 "내가 감독하면서 이런 대단한 연기를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사실 저도 찍기 전에 긴장했어요.

배우들 에너지가 엄청나게 튀어야 해서 감정을 최대한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장면이 다 정면 샷이거든요.

장비를 하나도 안 써서 그래요.

장비 넣었다 빼고 하면 집중이 안 되니까요.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하니까 스태프들도 다 집중해서 요만큼의 잡음도 안 들렸어요.

"
이어 "조진웅 배우의 땀이 마지막에 터질 때가 가장 신기했다"면서 "어떻게 땀을 모아놨다가 한 번에 터지게 할 수 있나 싶었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CG) 같았다"고 했다.

'대외비' 이원태 감독 "권력 향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이원태 감독은 '악인전'과 '대외비'에 이어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법쩐'까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연달아 연출해왔다.

그는 "아직 후속작 계획은 없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어두운 이야기는 안 하고 싶다"며 웃었다.

"몇 작품 연달아 센 이야기를 하니까 저까지 변해가는 것 같더라고요.

다음엔 좀 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