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미술관 속 해부학자] 최고의 피지컬은 '정신력'
지난달 24일 처음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피지컬:100’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피지컬:100은 3억원의 상금을 걸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100명의 몸짱 중 최고 육체(physical)를 뽑는 생존 경쟁 예능이다. 양학선 윤성빈 등 국가대표 선수들부터 보디빌더, 운동 유튜버, 특수부대 출신 군인 등 화려한 출연진이 멋진 몸매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이와 체급, 성별을 불문한 1 대 1 데스매치에서는 여성 출전자를 쉽게 보고 대결 상대로 지목했다가 큰코다치는 남성 출연자나, 반대로 자신보다 두 배나 큰 남성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여성 출연자가 짜릿함을 선사해줬다.

미션을 시작할 때마다 겉으로 보이는 육체와 기존의 평판을 보고 자신 있게 승자를 전망해 보지만, 예상은 어긋나기 일쑤다. 각 미션이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피지컬만을 다루는지, 시합은 공정한지에 의문을 품는 시청자도 있지만 반전이 속출하는 경기를 보며 누가 최고 피지컬로 뽑힐지 벌써 궁금하다.

피지컬에 관심이 많은 화가가 있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그는 더 나은 작품 활동을 위해 예술가의 관점에서 인체 구조와 기능을 알아야 하고 화가는 해부학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며 수십 구의 시신과 동물을 해부했다. 당시 인체를 해부하기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빈치는 인체 구조뿐 아니라 인체의 기하학과 역학 규칙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인체의 이상적인 비례를 제시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또는 ‘인체 비례도(Canon of Proportions)’를 완성했다.
[이재호의 미술관 속 해부학자] 최고의 피지컬은 '정신력'

'인체 비례도' 완성한 다빈치

이 그림을 보면 원과 정사각형 안에 한 남성이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데, 그 의미를 분석해보면 대략적인 인체의 비례를 알 수 있다. 정사각형 속 인체에서 가로인 양팔을 벌린 길이, 즉 윙스팬과 세로인 키가 같다. 또한 배꼽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 손가락 및 발가락의 끝과 일치한다. 이런 인체의 비례와 비율을 바탕으로 황금비율을 찾은 다빈치는 그의 대표적 작품인 ‘모나리자’에도 이를 적용했다. 이 황금비율은 현재까지 다양한 예술작품, 디자인, 건축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일부는 성형외과에서 미적 기준으로 쓰이기도 한다. 의사들에게 미용적으로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순한 비율이나 비례가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로움과 균형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에게 이상적인 육체란 비례를 충실하게 따른 남성이 기준이었고, 고대 그리스 신들의 형상에 가까웠다.

피지컬과 멘탈은 결국 하나

다시 피지컬:100으로 돌아와 보면, 근력이나 지구력 등을 필요로 하는 미션과 단체전에 이어 그리스신화 장면들을 재현하는 미션이 시작됐다. 100㎏의 공을 오래 들고 있어야 하는 ‘아틀라스의 형벌’은 승모근(등세모근)과 코어 근육의 지구력이, 선착순 장애물 달리기 후 횃불을 차지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은 햄스트링 근육을 중심으로 단거리 달리기 능력이, 끊임없이 내려오는 줄에 오래 매달려야 하는 ‘이카로스의 날개’는 등근육과 악력이 요구됐다. 또한 꼬리잡기 같은 오래달리기인 ‘우로보로스의 꼬리’는 심폐 능력과 달리기를 기반으로 한 지구력이, 언덕을 오가며 100㎏ 공을 굴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에서는 공을 굴리기 위해 팔과 등의 근육,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볼기에서 장딴지 근육까지 다리 전체의 근육이 요구됐다.

앞선 미션에서 한계에 부딪혀 이를 악물고 도전하는 참가자나 승부에 져서 안타까워하며 욕을 뱉는 참가자를 보며 희열을 느꼈다면 단체전에서는 적절하게 팀을 구성하고 대진을 정하며, 중요한 순간 팀을 이끄는 모습이 돋보였다. 미션 중에는 죽을힘을 다해 경쟁하지만, 시합을 마친 후 경쟁자나 팀원들과 서로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는 페어플레이의 모습이 우리를 더 뭉클하게 했다.

최고의 피지컬을 뽑기 위해 시작된 예능이 단순히 육체를 넘어 지혜와 리더십의 중요성을 드러내며 예능을 넘어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의학에서도 몸의 구조와 형태는 해부학의 분야지만 인체의 모든 세포에서 장기까지의 기능은 생리학이다. 어원상으로도 피지컬은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그 기능을 제대로 할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엄청난 투지와 근성을 보여주는 참가자들을 보며 우리는 감탄을 자아내며 박수를 보낸다. 육체를 가리키는 피지컬의 반대말은 마음 혹은 정신이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진 않다.

이재호 계명대 의대 교수